[차동원의 디지털 경영] 規矩準繩(규구준승): 규범이 없으면 모든 것이 위태롭다

2024-07-01

규구준승(規矩準繩)은 목수가 사용하는 필수 연장인 ‘그림쇠(컴퍼스), 곱자, 수준기, 먹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사물의 준칙’, ‘생활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법도’를 은유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관포지교(管鮑之交) 고사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관중(管仲)은 중국 춘추시대 중엽 제나라의 재상으로, 제환공(齊桓公)을 도와 제나라를 춘추시대 패권국으로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당대 최고의 정치가였던 관중은 중상주의에 기반한 부국강병론을 주창해 상가(商家)의 효시로 불린다.

또한 엄격한 법 집행을 강조해 법가(法家)의 효시로도 알려져 있다. 관중은 저서 <관자(管子)>에서 “아무리 총명한 군주라도 법을 등지고 다스리면 그림쇠와 곱자를 버리고 네모와 원을 그리는 것과 같다(배법이치, 시폐규구이정방원야:背法以治, 是廢規矩而正方圜也)”라며, 성군으로 천하의 패자가 되고자 한다면 먼저 규구(그림쇠, 곱자)에 해당하는 규범과 제도를 갖춘 후 백성에게 덕을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의 사무실 벽에는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의 친필 휘호 한 점이 걸려 있다. ‘담담(淡淡)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라는 글이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사무사(思無邪)’라는 말로 ‘생각에 삿됨(사특함)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의 좌우명이기도 한 ‘담담지심(淡淡之心)’은 공자의 ‘사무사(思無邪)’를 현대 언어로 가장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공자의 ‘사무사’와 정주영의 ‘담담지심’

정 회장에 의하면, 담담한 마음이란 ‘무슨 일을 할 때 착잡하지 않고 말이나 생각이 정직한 상태’를 말한다. 삿됨이 없는 맑은 마음으로 주변 상황을 듣고 보아야 투명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투명하게 생각이 정리돼야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내린 의사결정은 뿌리 깊은 나무처럼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세고 강건하게 추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다시 정 회장의 말을 빌리면, 담담한 마음을 가질 때 태도는 당당하고 굳세지고 의연해지기 마련이다.

매일 아침 필자는 벽에 걸린 정 회장의 글을 곱씹으며, 경영자로서 내리는 나의 모든 의사결정이 담담한 마음으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개인적인 욕심으로 내린 의사결정은 없는지, 지인에게 특혜를 주거나 회사에 손실이 되는 의사결정을 내린 것은 없는지, 누군가를 편애하거나 편견을 가지고 대하지는 않았는지,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지, 훗날 돌아볼 때 후회하지 않을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지를 매일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담담지심 경영의 토대는 ‘규구준승’

그러나 매순간 사심(邪心) 없는 담담한 마음을 유지하며 일을 하기는 어렵다. 옛 선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원칙을 마련하고, 지키면 허물이 없고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이런 기본 원칙을 규구준승(規矩準繩)이라 했다.

경영자는 판단기준을 바로 세우고, 실천 가능한 판단 기준을 만들고, 기준에 따라 점검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경영자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른 판단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바른 판단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기업의 목적이 단순한 ‘이윤 창출’을 넘어 기업과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가치 창출’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환경, 사회적 책임 및 투명한 경영체계 영역까지 포함하여 평가하는 ‘ESG’(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적 책임, Governance·지배구조), 기업 활동 그 자체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이윤을 동시에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CSV’(Creating Shared Value·공유가치 창출), 공익을 통한 무한성장 전략 하에서 기업의 제품, 서비스, 운영, 핵심역량,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총체적인 이익을 뜻하는 ‘TSI’(Total Societal Impact·총 사회적 영향) 등 이미 필자가 말한 전략 지표를 기준으로 참조하면 좋다.

다음으로, 바른 판단 기준을 실천할 수 있도록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정직, 존경, 책임, 공정 등에 반대하지 않는다. 서류 상으로는 모든 기업이 위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서류로만 존재해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구호만 요란한 철학, 실천 기준은 안된다. 전략 지표에 따라 실천 계획이 만들어져야 하고, 실천을 위해서는 도덕성, 사회규범, 준법의식 등이 조직 내에 구조화되고 규범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그 가치를 적극 장려하고 실천 도구를 만들어서 기업에 녹아 들게 해야 한다.

과시를 위해서 또는 남들을 따라서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구체적인 실천 도구가 없거나 실천 불가능한 도구는 없는 것과 같다.

규구준승의 시작은 솔선수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자가 규범 준수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옳은 가치를 알고 늘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으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규범은 98% 지키는 것보다 100% 지키는 것이 더 쉽다’. 규범에 반하는 일을 ‘이번 한 번만’이라고 예외를 인정하면, 한 번의 예외는 더 많은 유혹을 받게 된다. 규범을 만들고 솔선수범해 지키는 리더만이 성공할 수 있다.

직원에게는 준법경영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경영자는 이를 지키지 않는 회사라면, 존속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가지고 있어도 규범이 지켜지지 않고 탈법을 일삼는 회사는 망하기 마련이다. 규구준승이 잘 지켜지고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필자가 아는 어느 기업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모 임원이 오너의 지인 A에게 높은 금액으로 특혜를 주어 구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나중에 A는 여러 부정에 연루돼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직원들은 A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A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불문율이 됐다.

시쳇말로 A가 '슈퍼 을(乙)'이 된 것이다. 직원들은 일에 대한 회의와 자괴감을 가지게 됐고, 우수한 직원들부터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망가진 조직이 다시 정비되고 제 기능을 발휘하는데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사사로운 결정으로 회사를 위기에 빠뜨리고 개인적으로는 사법처리를 받는 경영자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신뢰를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법애어민’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의 영웅 조조(曹操)가 장수(張繡)를 토벌하려고 출병할 때의 일이다. 마침 보리를 수확하는 시기여서 농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조는 군사들에게 ‘진군 도중 보리밭을 밟는 자가 있으면 엄벌에 처한다’는 군령을 내렸다. 그런데 밭에서 날아오른 비둘기에 놀란 조조의 말이 보리밭을 밟았다.

조조는 즉각 자신의 두발(頭髮)을 잘라 스스로에게 벌을 내렸다. 스스로 본보기를 보여 군사들이 군령의 엄중함을 깨우치도록 한 것이다. 이를 본 군사들은 이후 군령을 철저히 따랐다. 이처럼 백성(농민)을 아끼는 애민정신과 규율을 중시하고 솔선수범하는 자기통제가 있었기에 조조는 훗날 경쟁자인 유비와 손권을 누르고 중원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

서쪽 변방의 진나라를 최강국으로 부상시키고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정치가 상앙(商鞅)은 저서 <상군서(商君書)>에서 “군주가 법으로 다스리지 않는 것은 저울추와 저울대를 버리고 무게를 재려는 어리석음과 같다(석권형이조경중자:釋權衡而操輕重者)”고 했다. 법을 세우고 바로 다스리는 것 이야말로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길 ‘법애어민(法愛於民)’이라고 강조했다.

담담한 마음으로 “모든 권력은 공평한 잣대인 권형(權衡)에서 시작되고, 권형은 바른 도(道)에 근거해야 정당성을 가진다”는 관중의 말을 명심하자. 경영자는 디지털 경영 시대에 맞는 올바른 경영철학(道)을 다시 세우고, 바른 일을 바른 방법으로 솔선수범하는 권형(規矩準繩)이 기업의 본원적인 경쟁력임을 명심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오늘을 시작하자.

차동원 HNIX 대표/디지털 경영 에반젤리스트 (dongwonc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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