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이 삼성SDS의 홈IoT 사업부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의아했는데(스타트업이 대기업의 사업부를 인수한 흔치 않은 사례인데다 다루는 영역도 이질적이라), 그때 사들인 ‘디지털 도어락’이 지금 쏠쏠한 매출원이 되고 있단다. 직방이 하드웨어, 그것도 어쩐지 별로 세련돼 보이지 않는 도어락을 한다는 게 좋은 선택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흥미가 생겼다.
그런데 요즘 직방의 디지털 도어락, 그러니까 홈 IoT 사업을 총괄하는 이가 자율주행 회사 포티투닷에서 실증 사업을 담당하다 온 김민규 씨(=사진)라는 걸 알고서는, 아 만나봐야겠다 싶었다. 스마트홈은 가게 될 미래지만 발전이 더디게 느껴진다. 반대로 자율주행은 당장 기술 개선 속도도 빠르고 화려해 보인다. 상대적으로 정체돼 보이는 이 스마트홈 시장을 그는 왜 선택했을까.
직방의 비즈니스 다변화, 김민규 총괄의 의외의 선택. 두 측면을 가로지르다보면 지금의 프롭테크(부동산+기술) 시장과 스마트홈이라는 산업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24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직방에서, 김민규 스마트홈 R&D 총괄을 만난 이유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물과 기름을 섞는다는 것
요즘엔 다 집에서 차로 가지 않나? 반대로 차(자율주행 회사)에서 집(부동산 회사)으로 왔다
AI 쪽에서 가장 큰 게 사실 두 가지 아닌가. 스마트홈하고 모빌리티. 가장 큰 산업이 될 모빌리티를 4년 반 정도 해봤으니, 이제 스마트홈을 해보자 싶었다.
스마트홈과 모빌리티를 둘 다 해봤는데. ‘홈’이라는 산업이 모빌리티와 비교해선 어떤가? 재밌는 것도 있고, 답답한 것도 있을 것 같은데
모빌리티는 지금 굉장히 크게 움직인다. 수십조원 단위로 자본이 싸우고 있다. 작은 사업자들은 들어가기 매우 어려운 시장이다. 최근 5년 사이에, AI로 자율주행의 결과물을 막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스마트홈에 와보니까, 자율주행보다는 몇 년 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여러 기업에 기회가 있고, 직방도 도어락을 가지고 엣지 있는 서비스를 만든다면 역시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직방에 합류한지 11개월 됐다. 왔을 때 회사의 홈IoT 사업은 어떤 상황이었나? 솔직히, 냉정하게 봐서 말이다
고민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원래 홈IoT 사업부가 삼성SDS로부터 인수한 것 아닌가. 삼성이니까, 제조야 진짜 끝장나더라.
문제는 이제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거다. 소위 하드웨어 기름밥 먹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패러다임이 소프트웨어로 전환된다고 해서, 일하는 방식이나 조직 문화를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포티투닷에서도 같은 고민을 했었다.
포티투닷에서 트레이닝을 좀 받고 왔겠다
기계공학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하드웨어 중심 조직에 들어가서, 기업 문화를 바꾸는 걸 옆에서 지켜봤고, 엄청나게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이게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제조 기반의 사람들도 스프린트(모든 팀원이 정해진 목표를 단시간 내에 집중해 수행하는 것으로, 작은 주기로 목적을 달성시키는 개발법) 식의 업무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인데, 완전 쉽지는 않았지만 잘 따라와주고 있다.
제조 기반의 사람들을 상대로 어떻게 스프린트 식 업무 방식을 가져갈 수 있었나
2주마다 실제로 데모데이를 했다. 소프트웨어는 2주마다 업데이트를 치는데, 디바이스는 그러기 매우 힘들다. 그래서 안성우 대표한테, 격주 토요일마다 나와주십사 했다. 그렇게 힘을 받아서 조금씩 바꿨다. 소프트웨어의 짧은 이터레이션(Iteration, 짧은 개발 주기를 반복하며 고객의 평가와 요구를 수용하는 방법)을 하드웨어가 어떻게 빨리 따라갈거냐가 가장 큰 도전이었다.
비밀번호 없이 문을 연다는 것
직방에 오면서 가장 처음 받았던 미션은?
헤이븐(직방은 최근 비밀번호 없이 안면인식으로만 문을 여닫게 하는 도어락 신제품을 내놓았다. 그 이름이 헤이븐)같은 제품 콘셉트는 잡혀 있었는데, 이걸 실제 양산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게 도전이었다. 오랫동안 신제품이 안 나왔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해내야 했다.
디지털 도어락, 스마트홈 사업은 직방에 왜 중요한가. 직방은 원래 부동산 중개 플랫폼으로 커왔는데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곳이 나라마다 여럿이다. 부동산 메타 정보를 가지고 중개 플랫폼을 하다보면 한계를 느끼게 된다. 두 가지인데, 어느정도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더이상 파이를 키우기 어렵다. 글로벌로 나가야 하는데, 나라마다 부동산 정책은 매우 예민하고 특성이 다르다. 어떤 하나의 플랫폼이 부동산으로 세계를 다 먹을 순 없는 구조다.
따라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통상 부동산 중개 사이트가 먼저 진출하는 영역이 인테리어다. 그리고 일부가 스마트홈을 한다. 부동산 사업을 하던 곳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 가능한 영역이다.
다만, 인테리어는 글로벌로 나가야 한다는 미션을 생각하면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반대로 스마트홈은 기본적으로 디바이스로 시작하는 플랫폼 사업이라 글로벌 진출도 (인테리어보다) 쉽다. 사업적으로는 부동산 중개에서는 자리를 잡았으니, 다음 방점으로 글로벌을 잡았다. 그 관점에서 스마트홈 사업을 시작했고, 디지털 도어락을 대표 상품으로 삼은 것이다.
직방은 디지털 도어락 시장에서 무엇을 바꾸고 있나
생각해보면, 디지털 도어락 시장은 새로운 게임 체인저가 나오지 않고 있다. 디지털 도어락이란 제품이 나온지 벌써 40~50년이 됐다. 그때는 패스워드로 문을 연다는 것이 혁신이었는데, 이후로 바뀐 게 없다. 패스워드를 쓴다는 것은, 근본적 불안감을 갖게 하지만 워낙 강력한 폼팩터다 보니까, 아무도 못 건드린다.
이걸 깨야지 시장을 키울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남들과 비슷한 제품에 기능을 몇개 더 넣거나 가격 경쟁을 하는 거다. 제로섬 게임이다. 그런데, 중국에선 이게 시장이 좀 달라지고 있다. (도어락에) 하이테크가 붙고 있고, 전자제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전자제품이 된 디지털 도어락과 스마트홈이 언뜻 잘 연결되어 생각되지 않는다
도어락만큼 확실히 스마트홈 시장을 위한 트리거가 없다. 물리적인 트리거를 만들려면 ‘개인화’가 되어야 한다. 이 건물에 몇 가구가 살고, 각 가구의 구성원이 언제 나갔다가 들어오는지 그런 게 분석이 되어야만 정확한 트리거를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데이터를 알면 무엇을 할 수 있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지 않는다. 개인도, 요일마다 출퇴근 시간이 다를 수 있다. 아이가 언제 학원에 가는지, 추정이 가능하다. 보통 9시면 아이가 학원에서 오는데 안 들어온다? 정말 큰일 아닌가. 부모님이 아플 때, 약속된 시간에 간병인이 안 온다면? 아이가 커서 더이상 부모와 같이 외출하지 않는다는 것을 데이터로 확보한다면?
도어락은 세대를 구성하는 각 개인별 생활 패턴을 가장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기기다. 그걸 알게 된 거다. 결국은 사람들은 문을 통과해야만 밖에 나가거나 집에 들어올 수 있다. 사람들이 들고나는 패턴을 개인별로 알면 스마트홈을 위한 트리거를 만들 수 있다. 에너지 절약은 물론이고, 이상 상황을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다.
그런 기능을, 헤이븐은 현재 어느정도 구현하고 있나
얼굴 인식으로 개인별 출입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도어락 쪽에서 생체 안면 인식 기술은 현재로선 중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나다. 그런데, 그정도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제품을 우리도 올해 하반기에 출시할 예정이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도) 중국의 제품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엣지는 비밀번호를 아예 도어락에서 빼버렸다는 거다. 비밀번호 없이도 완벽히 구동이 되는 것은 비밀번호 유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된다. 아이들이 실수로 비밀번호를 말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영화처럼 파우더 바르면 비밀번호 알 수 있다. 그리고 옆에서 누가 보고 있으면 누르기 힘들다

직방은 스마트홈 시장의 테슬라가 될 수 있나
마지막으로, 스마트홈 시장 자체에 대한 질문이다. 10년 전에 CES에 갔을 때, 화두가 ‘스마트홈’이었다. 구글도 아마존도 모두 스마트홈에 집중했다. 하지만 지금 스마트홈은 솔직히 별거 없지 않나
스마트홈이 잘 되려면 넘어야 할 세 가지 도전과제가 있다. 첫째, 비싸다. 빅테크가 내놓은 스마트홈 허브도 수십만원씩 한다. 두번째, 설치가 어렵다. 혹시 전동 커튼을 달아봤나? 생각만 해도 깜깜한 사람이 많을 거다. 마지막으로, 사용도 어렵다. 제품들을 쉽게 컨트롤 하지 못한다.
그런데 도어락은 이런 범주에서 벗어난다. 쉽게 쓸 수 있는데, 개인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스마트홈을 할 수 있게 하는 트리거가 되는 거다. 도어락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월패드, 로비폰 등으로 기기를 확장하면서 데이터를 활용해 제공하는 서비스 역시 늘려갈 예정이다.
자율주행과 달리, 스마트홈 시장에서는 ‘테슬라’와 같은 회사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스마트홈 시장의 테슬라와 같은 회사가 되길 희망하나?
물론이다. 테슬라는 완전히 게임 체인저 아닌가. 스마트홈 시장에서도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시장도 바꿀 수 있고 매출도 올릴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더이상 도어락 단품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이 없을 건 분명하다. 너무 평준화 되어 있으니까. 가격 경쟁력으로 싸우는 건 우리에게 의미 없다. 그래서 올해 도어락을 만드는 포지셔닝에서 스마트홈 컴패니로 가는 도약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세우려고 한다. 그래서 도어락을 사면 (스마트홈) 허브를 주는 것도 준비 중이다.
도어락이 일년에 200만개 이상 팔린다. 이중 일부가 아주 쉽게 스마트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걸 써보니까 전기료가 30% 줄어든다’ 이런 포지셔닝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
다 좋은데, 그렇게 되려면 ‘직방’이라는 브랜드 네이밍을 좀 바꿔야 하지 않겠나? 기존의 도어락이 달고 있던 ‘삼성’ 보다는 인지도가 약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글로벌로는 직방이 낯선 단어라
삼성보다 약하다는 건 인정한다(웃음). 하지만 도어락은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엄청 큰 요소로 작용하진 않는다. 지금은 (직방보다는 도어락 제품 브랜드인) 헤이븐을 강조하는 전략이 있긴 하다. 해외에서는 직방의 인지도가 높진 않아서 시장을 세분화했다. 1인 가구도 있고, 아이가 있는 집도 있고, 장년층도 있고 다양하다. 그래서 직방이란 일원화된 브랜드로 가는 것보다, 시장마다 도어락을 브랜딩하려 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최가람 기자> ggchoi@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