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 없어요"…훈센 측근 '스캠 리조트' 제재 비웃듯 북적 [르포]

2025-10-21

태국과 국경을 맞댄 캄보디아 남서부 코콩(Koh Kong) 해변.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현지인 가족 뒤편으로 코린트식 기둥과 웅장한 돔으로 장식한 ‘코콩 리조트’가 위용을 뽐낸다.

이 리조트는 1985~2023년 38년간 캄보디아 총리를 지냈고, 훈 마네트 현 총리의 아버지인 훈센(73) 상원의장의 측근인 리용팟(67) 상원의원이 운영하는 곳이다. 호텔·카지노·관광사업 등 리용팟 그룹을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은 리용팟은 현지에서 ‘코콩의 왕’으로 불리는 거물이다.

그는 지난해 9월엔 리용팟 그룹과 함께 미국 재무부 금융제재 대상에 지정됐다. 코콩 리조트, 오스마흐 리조트, 가든시티 호텔, 프놈펜 호텔 등 4곳도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사이버 스캠(사기), 인신매매, 고문 등 각종 범죄가 벌어졌다는 게 이유였다. 미국의 제재에도 리용팟의 집권당 내부 입지는 굳건했다. 제재 직후 캄보디아인민당은 되려 “당은 리용팟이 미국이 고발한 인신매매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강력히 믿고 있다”며 “리용팟에 대한 제재를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난 19일 오후 기자가 찾은 코콩 리조트는 미 제재를 비웃듯 성업 중이었다. 낮 시간대인데도 카지노는 손님이 절반쯤 차 있었다. 무장 경비원이 삼엄한 경계를 서는 다른 범죄 단지(웬치·园区)와 달리 입구도 활짝 열려 있었다. 리조트 직원에게 ‘하룻밤 묵을 수 있는지’ 묻자 “예약이 꽉 찼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지 교민은 “태국과 전쟁을 하는 바람에 손님이 예전 같진 않을 텐데 빈방이 하나도 없다는 건 이상하다”며 “외부인을 경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수상한 정황도 보였다. 리조트 객실 복도 끝 옆 건물로 이어진 으슥한 콘크리트 통로에선 문신을 새긴 청년들이 수시로 걸어 나왔다. 콘크리트 통로 곳곳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었다. 실제 지난 8일 싱가포르 최대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즈’는 취업 사기가 의심되는 코콩 리조트의 구인 광고를 알선한 싱가포르 기업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기업은 구직자에게 월급 5000달러(약 713만원)를 받는 수석 고객 서비스 임원직을 제안했다. 이후 코콩 리조트에서 3개월 동안 숙식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구직자를 끌어들였다고 한다. 한 현지인은 “리조트에서 스캠이 이뤄진다고 알고 있지만 경찰이 단속을 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스콜 금방 그친다. 범죄 단지 금방 재개”

최근 캄보디아 범죄 사태에 국제 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제재가 잇따르면서 캄보디아 정부가 연일 범죄 단지를 급습하고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 안팎에선 ‘보여주기식’ 단속이란 회의적 시선도 적지 않다. 현지의 공권력과 범죄 조직의 유착 구조가 여전하단 분석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29일 ‘2025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정부는 업장 운영자로 의심되는 사람이나 이와 관련된 고위 공무원을 체포하거나 기소한 적이 없다”며 “미국 제재를 받는 상원의원에게도 형사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시아누크빌의 한 자금 세탁책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조직원들이 지금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다”면서도 “금방 그치는 스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곧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캄보디아 범죄 사태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장기전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이버 스캠은 동남아 지역의 만연한 부패와 중국 자본에 종속된 경제 구조가 맞물려 발생한 현상이라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중국 자본이 동남아로 흘러가는 구조 자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한 초국적 인신 매매 사건이기에 우리나라가 20년 만에 의장국을 맡은 2025 APEC에서 관련 의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코콩(캄보디아)=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이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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