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블라이’, 여성의 연대와 희망에 관하여

2025-02-21

“여성은 집에 있어야 한다.”

19세기 미국 사회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말이다. 하지만 한 여자는 그 말에 분노했고, 움직여 싸웠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SH아트홀에서 공연한 뮤지컬 ‘넬리블라이’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창작 뮤지컬 ‘넬리블라이’는 실존 인물인 기자 엘리자베스 코크런(필명 넬리 블라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극은 시대의 부조리에 맞서 싸운 한 여성의 치열한 여정을 조명하며, 사회적 편견과 권력 구조를 정면 돌파하는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풀어낸다.

극 중 엘리자베스는 여성의 역할을 가정에 한정하려는 신문 칼럼에 분노하며 편집국을 찾아가 항의한다. 그러다 ‘여성의 가치’를 증명하겠다며 공장 노동 환경을 취재하게 되고, 이후 강제 입원의 위험을 감수하며 악명 높은 ‘블랙 웰스’ 정신병원에 잠입 취재까지 감행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전기(傳記)극을 넘어, 한 여성이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지켜나가는 과정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까지 섬세하게 그려낸다.

■ 유쾌한 터치 속 묵직한 메시지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지만, ‘넬리블라이’는 지나치게 무겁거나 교훈적인 방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재치 있는 연출과 빠른 템포의 전개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편집장 매든과 기자 윌슨과의 유쾌한 신경전, 정신병원에서 펼쳐지는 기발한 군무 장면 등은 작품의 리듬을 살려준다. 다만 주인공 서사나 내면의 이야기가 생략돼, 엘리자베스가 결단을 내리는 과정이 좀 더 촘촘하게 그려졌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 이불 돛단배, 연대와 희망

정신병원에서 엘리자베스, 도로시, 루나가 함께 이불로 돛단배를 만드는 장면은 작품 속 가장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다. 현실에서는 도망칠 수 없는 감금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조차 희망을 꿈꾸는 여성들의 모습은 연대와 자유에 대한 강렬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단순한 탈출의 의미를 넘어서, 서로를 지지하고 믿어주는 여성들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힘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더 넓은 숲을 보라 말하지만 너는 숲을 이루는 나무”

넘버 ‘숲’의 이 가사는 엘리자베스가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신념을 다잡는 순간과 맞물려 강한 울림을 준다. 개인과 사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담아낸 곡이었다. 배우들의 뛰어난 앙상블과 감정이 실린 가창력은 이 곡의 서정적 감동을 배가시키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뮤지컬 넬리블라이는 단순히 한 여성 기자의 영웅담을 넘어서, 시대를 초월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언론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지금도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가?’

‘용기 있는 여성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 질문들은 유효하다. 특히 12·3 계엄내란 사태 후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20대 젊은 여성들이 앞장서 나선 사례와 맞물리며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용기 있는 한 여성이 만든 ‘변화’라는 희망, 그 울림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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