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지가 지났지만 아직은 1년 중 밤이 가장 긴 겨울의 한복판이다. 이런 겨울엔 어떤 이야기가 어울릴까.
겨울에는 귀신과 요정이 나오는 슬픈 이야기가 최고라고, ‘겨울 이야기’에서 마일리스 왕자는 말한다. 과연 그 말처럼 근거 없는 의심에 사로잡힌 아버지 레온티스 왕은 왕비를 상간녀 취급하며 투옥하고 갓 태어난 공주를 황야에 버린다. 상심한 왕비와 마일리스 왕자 역시 충격과 슬픔으로 죽는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그렇게 벌어졌다.

‘겨울 이야기’(사진)는 셰익스피어의 후기작이다. 희비극이 중첩된 로맨스극으로, ‘템페스트’와 ‘심벨린’도 이 계열에 속한다. 유명한 4대 비극을 발표한 이후로 작가의 극작술은 원숙해졌지만, 스토리는 요정 이야기처럼 단순해졌다.
과거의 셰익스피어였다면 질투에 사로잡힌 레온티스 왕을 ‘오셀로’처럼 몰아가거나, 마일리스 왕자가 성장하여 ‘햄릿’처럼 복수극을 전개했을 것이다. 대신 셰익스피어가 선택한 것은 인간의 혼돈을 해결해주는 시간의 힘이었다.
작품의 후반부, 느닷없이 ‘시간’이라는 등장인물이 나타나 16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선언한다. 그 건너뛴 시간 동안 황야에 버려졌던 공주 퍼디타는 목동의 딸로 아름답게 성장했고, 후반부의 이야기는 퍼디타가 연인과 함께 아버지를 만나는 봄의 이야기로 모아진다. 심지어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마저 살아 나타나 남편을 용서하고 가족과 재회하니, 그야말로 낭만적 해피엔딩이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절, 영국의 물가는 100년 동안 다섯 배로 치솟았다고 한다. 서민들은 흑빵밖에 먹을 것이 없는데도 위정자들은 골육상쟁의 권력게임에 골몰하던 시절, 말년의 작가는 동화 같은 ‘겨울 이야기’로 봄의 희망을 말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을씨년스럽던 을사년 한 해가 저문다. 영하의 겨울이지만 겨울이 왔으니 우리들의 봄도 멀지 않을 것이다.
김명화 극작가·연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