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사태에서 되새겨야 할 것들

2025-12-30

차분하게 한 해를 결산하고 새해를 설계해야 마땅한 마지막 날이지만 가뜩이나 어수선한 한국 사회에 어지러움을 더하는 통일교 사태를 외면하기 어렵다. 통일교의 합동결혼식을 참관한 적이 있다. 2010년대 초반 종교 담당 기자로 일할 때다. 정확한 날짜와 장소는 기억나지 않는다. 주최 측은 어떤 식으로든 기사를 써주면 좋겠다는 부담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국적과 피부색을 달리하는 수백, 수천의 남녀를 현존하는 재림 메시아가 일일이 짝지워 한 자리에서 결혼시키는 ‘기행’에 대한 언론의 거부감을 덜어보자는 취지였는지 모른다. 그래선지 기사라는 물증이 남아 있지 않다는 얘기다.

예상과 달리 볼거리가 풍성했다는 인상은 어렴풋하지만 분명하게 남아 있다. 축제 같았고, 청춘 남녀들의 흥분과 기쁨이 느껴졌다. 합동결혼이 언어도단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십상이다.

기성 종교 경직될 때 이단 싹 터

그렇다고 법인 해산이 정답일까

종교와 정치권 똑같이 자성해야

알 길이 없는 결혼식 주인공들의 내면을 노벨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미국 작가 돈 드릴로(89)의 소설에서 헤아려 볼 수 있다. 경희대 유정완 교수의 번역으로 2011년에 국내 출간된, 드릴로의 1991년 소설 『마오 2』인데 뉴욕 양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통일교의 대규모 합동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캐런을 동양의 사이비 종교에 빼앗긴 미국인 부모는 이를 간다. 통일교에 빠져 생면부지의 한국인 남성 김조박(한국의 대표적인 성씨를 조합해 작명한 드릴로의 위트라고 봐야겠다)을 남편으로 맞은 캐런의 내면은 딴판이다.

‘그들을 진정으로 두렵게 만드는 것이 이것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것. 그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우리가 진정한 믿음을 보이면 그들은 정신과 의사를 부른다. 우리는 신이 누구인지 안다. 우리가 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 눈에 미치광이가 되는 것이다.’(17쪽)

1980년대 중반 탈세 혐의로 고(故) 문선명 총재가 1년 넘게 복역한 뒤 미국 내 교세가 크게 위축된 듯하지만, 그보다 앞서 통일교는 60년대 후반 미국 사회에 불었던 해방의 바람을 타고 신앙 신대륙 개척에 성공했던 듯하다. 65년 이민법 폐지에 따른 아시아인 유입 증가가 베이비부머 세대의 베트남전 반전 운동, 기성 서구 종교에 대한 환멸 등과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가정의 순결과 긴밀한 공동체를 원하는 도시의 고학력 청년 신자들이 상당수 생겨났다고 한다(『새로 쓴 미국 종교사』).

물론 개인주의자 드릴로의 착목점은 통일교의 합동결혼식이 상징하는 현대사회의 몰개성주의·획일주의 비판이었다. 하지만 시야를 종교 영역으로 좁힌다면, 기성 종교가 도그마에 빠져 ‘진정한 믿음’을 갈구하는 캐런들의 영적 수요를 등한시할 경우 사이비 종교라고 지탄받는 신종교가 언제든 우리 곁을 파고들 수 있다는 점 역시 오늘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통일교의 정치권 로비를 문제 삼아 대통령이 종교 법인 해산 검토까지 지시한 것은 왠지 공허하게 느껴진다. 종교학 교과서를 펼치지 않아도, 우리의 존재 의미, 필멸을 넘어서고자 하는 영적 열망에 종교가 관여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사이비든 정상 종교든 불안한 영혼들의 영적인 일탈을 실정법이 물샐 틈 없이 통제할 수 있을까.

불투명하지만 통일교의 실체를 어림잡아 그 미래를 점쳐볼 수도 있겠다. 통일교 사정에 밝은 교계 전문가들은 통일교를 종교 기업으로 본다. 어디까지가 신앙의 영역이고 어디부터가 비즈니스의 영역인지 경계가 헷갈린다는 것이다. 국내외 언론사와 건설사, 미국 고급 초밥집의 70~80%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식품 회사, 각급 학교와 공연단체 등 수십 개 사업체를 갖고 있다. 일요 예배에 참가하는 국내 신자 수는 알려진 것보다 크게 적은 1~3만 명 정도로 본다. 신자는 아니지만 수십 개에 이르는 통일교 사업체들 종사자 수는 얼마나 될까. 2007년 설립돼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245개 전 지역구에 후보를 냈던 평화통일가정당의 전국 득표수가 18만 명 정도였다. 이 숫자를 통일교 사업체에서 월급 받는 식구 숫자로 볼 수 있다고 추정한다. 통일교 종교 법인을 해산한다고 해서 통일교 관련 기업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통일교와의 인연을 끊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복하지만, 통일교가 저지른 비위 사실을 정상참작하자는 게 아니다. 종교의 탈을 쓰고 정치권 금품 로비에 나선 종교인의 일탈도 문제지만, 망설임 없이 덥석 받아 챙긴 정치권도 똑같이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정교유착’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치와 종교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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