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과 에너지, 광양에서 만나다
LNG 산업 게임 체인저 ‘고망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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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하 회장은 조선해양 전문가 출신으로 LNG 추진선의 연료탱크에도 고망간강을 적용하도록 적극 지원했습니다. 수익이 나지 않는 오랜 과정에서도 기술 개발을 위한 끊임없는 투자와 경영적 판단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광양제철소 연구소에서 만난 이순기 포스코 기술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장인하 포스코 회장의 결단이 고망간강 LNG 저장탱크의 상용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기존 9% 니켈강은 성능이 우수하지만 가격이 비싸다. 이에 반해 포스코가 15년간 연구 끝에 개발한 ‘고망간강’은 가격이 약 30% 저렴하면서도 극저온에서도 강도를 유지하는 독자 기술이다. 경제성과 내구성을 동시에 갖춘 이 신소재는 LNG 산업의 판도를 바꿀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이 연구원은 “한화오션이 처음 LNG 연료탱크에 고망간강을 적용하는 걸 주저할 때도 장 회장이 직접 나서서 설득했다”며 “그 결과 현재까지 36척의 LNG 추진선에 고망간강이 적용됐고,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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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철강 생산기지...커피 후판공장?
버스를 타고 광양제철소 내부로 이동하자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시설이 나타났다. 이곳은 여의도의 7배 크기(666만 평) 세계 최대 단일 제철소로, 연간 2200만 톤의 조강(粗鋼)을 생산한다. 이는 하루 4500대의 자동차 강판을 만들 수 있는 규모다.
특히 LNG 저장탱크와 선박용 강재를 만드는 ‘고망간강’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제철소 관계자는 “광양제철소는 이제 단순한 철강 생산지를 넘어 LNG 시대를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광양제철소 제강 공장에 들어서자 전로(용광로)에서 쇳물이 쏟아지는 모습이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제강 공장은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현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제철소에서 철광석과 석탄을 녹여 ‘에스프레소’ 같은 원료인 용선을 만들고, 제강 공정에서는 이 용선을 정제해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처럼 원하는 제품으로 만든다”고 비유했다.
쇳물 위에는 불순물(슬래그)이 떠올라 있었는데 그는 “고기 국을 끓일 때 위에 뜨는 찌꺼기를 걷어내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정. 쇳물은 정련 과정을 거쳐 ‘슬라브(Slab)’라는 반제품이 된다. 이 슬라브가 곧 LNG 저장탱크와 선박의 주요 소재인 ‘고망간강’으로 변신하게 된다.
다음으로 도착한 압연 공장 내부는 고온에서 붉게 달아오른 네모난 철판이 길게 늘어지는 장면이 펼쳐졌다.
압연 공장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대부분의 공정이 자동화되어 있어 직원 수가 많지 않았다. 거대한 기계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듯 고망간강을 LNG 저장탱크와 선박용 강재로 변형시키고 있었다. 무거운 철판이 정교하게 가공되는 과정이 인간의 손길 없이도 완벽하게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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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그룹, 철강·에너지·조선 잇는 ‘LNG 밸류체인’ 구축
제철소를 나와 광양 LNG 터미널로 이동했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민간 LNG 터미널로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 중이다.
터미널을 제대로 보기 위해 높은 철제 계단을 올랐다. 난간을 잡고 조심스럽게 올라가자 발밑으로 광양항이 펼쳐졌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보이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거대한 LNG 저장탱크들이 늘어서 있었다.
관계자는 “LNG 저장탱크는 밥솥과 비슷한 구조”라며 “외부는 콘크리트로 감싸고, 내부는 고망간강으로 만들어 LNG를 극저온에서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이 터미널은 LNG 운반선의 최종 시운전 거점이기도 하다. 방문 당시, 한화오션이 건조한 LNG 운반선이 시운전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그는 “선박은 LNG를 싣고 한 달 이상 운항하며 성능을 테스트한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며 “사용하고 남은 LNG를 터미널에 반납한 뒤 내달 중순쯤 인도된다”고 밝혔다.
광양 LNG 터미널은 포스코그룹의 철강, 에너지, 조선, 건설을 하나로 연결하는 ‘LNG 밸류체인’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포스코그룹은 그룹내 시너지를 모아 LNG 관련 생산-운송-저장·판매-건설에 이르는 글로벌 밸류체인 확장에 힘쓰고 있다.
LNG 시장에서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신소재인 LNG 저장탱크용 극저온 고망간강과 이 소재를 세계 최초로 적용해 포스코이앤씨가 건설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의 LNG터미널이 대표사례다. 포스코그룹의 LNG 사업이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는 그룹사 간 협업을 통해 LNG 산업의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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