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유(自由)를 바란다. 구속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그러나 자유롭게 여행이라도 하려고 하면 비용이 발목을 잡는다. 빈곤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며, 소외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참여라는 구속을 선택해야 한다. 결국 완벽(完璧)한 자유(自由)란 현실(現實) 속에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자유롭기를 바란다.
자유와 부자유는 자유의사에 의한 선택 여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자유스러운 선택을 행사하면서도 부자유를 느끼는 것은 책임지지 않는 결과, 노력 없는 요행, 이성보다 감성적 욕망 등이 통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은 아닐까. 어떤 선택이건 시간이 경과된 후에는 결과를 만나게 된다. 흐르는 시간은 선택의 결과를 만들어 보여 준다.
스스로 선택은 했지만 정말 나의 뜻이었나. 남이 하니 따라 한 선택은 아니었나. 후회 없는 선택(選擇)은 어떻게 만들어 질까.
비탈진 산길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튼튼한 근육이 필요하다. 선택의 순간 튼튼한 근육이 필요하다. 생각의 근육은 질문, 반성, 고민을 통한 사고의 기회로 튼튼해질 것이다. 삶의 여정 중에 만나는 경사는 산길보다 훨씬 험할 수 있다.
행복한 자유는 어디로부터 올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나와 소통하고 있나. 나를 만나야 한다. 나를 대면하기 위해 홀로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생각과 실천 사이에서 묻고 느끼고 찾아내는 기회를 통해 생각의 근육을 키워 삶의 여정에서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고독(孤獨)은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최선의 장소이다. 세상(世上)은 너무너무 시끄럽고 끼리끼리 떼 지어 흐른다. 휩쓸려 남의 삶을 살 것인가. 나의 삶을 찾을 것인가. 생각과 행동이 필요하다.
산길을 걷는 노인의 뒷모습에서 평안을 보고 기도하는 성직자의 모습에서 평화를 본다. 그중 상당수가 내려놓은 이들의 모습이다.
고독(孤獨) 속의 최선(最善), 풍요(豐饒) 속의 내려놓음이 자유(自由)를 만나게 한다.
취업은 의사나 판검사가 된다면 너무너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대기업에 취업하면 최선이고, 사무관(5급 공무원)으로 취업하거나 교사로 취업하거나 중견기업에 취업하면 차선이며, 9급 공무원으로 취업하거나 순경으로 취업해도 선망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