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칼럼] 글로벌 공급망의 새 언어, 에코바디스가 여는 신뢰의 시대

2025-11-09

수출의 첫 관문은 ‘가격’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다

오랜 시간 동안 산업 현장을 지켜봐 왔고, 이제는 컨설턴트로서 영광스럽게도 우리 경제의 주역인 산업 일꾼들을 돕게 된 필자는 최근 수많은 CEO에게서 같은 질문을 듣는다.

“우리는 품질도 좋고 납기도 잘 지키는데, 왜 글로벌 바이어들이 거래를 주저하죠?”

그 답은 단순하다. 이제 세계 시장은 가격보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먼저 묻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 2024)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그리고 공급망 투명성 공시 의무제(2025)는 ESG 리스크를 ‘원청–협력사–하청’까지 확장시켰다.

그 결과, 글로벌 완성차·소재·전자 기업들은 협력사에게 ‘자기들 기준의 ESG 평가 결과’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 핵심 도구가 바로 에코바디스(EcoVadis) 다.

에코바디스, ‘신뢰의 여권’을 부여하다

에코바디스는 2007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지속가능경영 평가 플랫폼으로, 현재 150개국 250개 산업의 15만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EcoVadis 2025 Annual Index).

이 평가는 △환경(Environment) △노동·인권(Labor & Human Rights) △윤리(Ethics) △지속가능조달(Sustainable Procurement)의 네 분야에서 기업의 정책·실행·성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한다. 결과는 0~100점의 점수와 플래티넘~브론즈까지의 메달 등급으로 제공된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애플 등 글로벌 바이어들은 협력사 등록 시 ISO보다 먼저 에코바디스 등급을 확인한다(BMW Supplier ESG Standard, 2024 / Apple Supplier Responsibility Report, 2025).

이는 에코바디스가 단순한 인증이 아니라, 거래 자격의 ‘여권(passport)’이 되었음을 반증한다.

국내 기업들의 ‘데이터로 증명한 지속가능성’

국내에서도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OCI는 2024년 에코바디스 골드 등급(상위 5%)을 획득하며 글로벌 화학소재 분야에서 ESG 모범사례로 꼽힌다(EcoVadis Public Rating Report, 2024).

OCI는 MES·ERP 통합 시스템으로 공장별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배출량을 실시간 관리하고, 협력사에도 동일한 ESG 기준을 적용한다. 이 데이터 기반 접근 덕분에 유럽 대형 화학사와 신규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한솔페이퍼는 ESG를 ‘비용’이 아닌 ‘혁신 투자’로 접근했다(한솔그룹 지속가능경영보고서 2024). 스마트팩토리를 통해 공정별 에너지 사용 패턴을 분석한 결과, 연간 에너지 비용 18% 절감, 탄소배출 15% 감소, 평가 점수 45점 → 68점(실버 메달) 향상을 달성했다. ESG가 곧 수익임을 수치로 증명한 사례다.

이러한 변화는 중소기업에게도 희망을 준다. 경기도의 한 자동차 부품사는 첫 평가에서 38점을 받았으나, IoT 센서 100여 개를 추가 설치하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30%로 높인 결과, 18개월 만에 52점으로 상승해 ‘패스트 무버(Fast Mover)’ 배지를 획득했다(EcoVadis 2025 Fast Mover Insights).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가장 빠르게 개선하는 협력사”로 평가하며 거래를 확대했다.

ESG는 ‘보고서’가 아닌 ‘데이터 경영’으로

30년 전만 해도 우리는 공장 현장을 ‘생산성의 공간’으로만 보았다. 이제는 데이터가 곧 경영의 신뢰를 증명하는 시대다. 과거 ESG 대응은 문서와 서류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실시간 데이터 기반 ESG(Data-driven ESG)로 전환되고 있다.

MES, ERP, IoT 센서, FEMS(에너지 관리 시스템)를 연동하면 전력 사용량, 원자재 투입, 탄소배출량, 폐기물 발생량이 자동으로 집계된다.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한 한 중견 제조사는 평가 준비 기간을 3개월에서 2주로 단축했고, 탄소배출량 계산 정확도를 98%까지 높였다(산업통상자원부 ESG·스마트제조 융합사업, 2025).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한 것이다.

이제 스마트팩토리가 곧 ESG 경쟁력의 엔진이다. AI는 공정별 에너지 효율을 분석해 “실버 메달을 위해서는 에너지 절감 8% 필요”와 같은 구체적 개선 가이드를 제시하기까지 한다.

중소기업을 위한 현실적 대응 전략

그렇다면 인적·물적 자원이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보다 열악한 중소기업은 좌정관천하며 국제 변화의 흐름을 지켜보기만 해야 할까? 대답은 독자들도 알다시피 “아니다. 그러면 망한다.”이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동료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조언하고 싶다.

첫째, 정부와 공공기관의 지원을 적극 활용하라. 한국무역협회, KOSME(중소벤처진흥공단), 각 지역 테크노파크는 에코바디스 평가 컨설팅과 평가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무역협회 ESG 대응 가이드 2025).

둘째, ESG를 고객 대응이 아닌 경영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에너지 효율 개선은 비용 절감으로, 윤리경영은 인재 유지력으로, 공급망 투명성은 글로벌 거래 확장으로 이어진다.

셋째,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지속적 개선 체계를 구축하라. 에코바디스 2025 보고서에 따르면 3년 이상 연속 평가를 받은 기업의 평균 점수는 58.7점으로, 첫 평가 기업(45점 미만)보다 13점 이상 높았다. ‘계속 개선하는 기업’이 곧 신뢰받는 기업이다.

평가를 넘어, 신뢰의 경영으로

에코바디스는 단순한 ‘평가 플랫폼’을 넘어 글로벌 시장의 신뢰 프로토콜(Sustainability Trust Protocol) 로 자리 잡았다. 기업이 데이터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개선을 지속한다면,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브랜드가 된다.

지속가능경영은 더 이상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소기업도 ‘데이터로 증명하는 ESG’를 통해 글로벌 바이어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는 지속가능성을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이 ‘예(Yes)’라면, 그 기업은 이미 글로벌 시장의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주역인 산업인력의 노고와 헌신이 반드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