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다린다, 고향을 빛낼 또 다른 지도자를

2024-12-04

1987년 12월, 뱃속에 7개월 된 첫째를 품은 여성의 손을 잡은 나는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향하였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후보로 나선 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1988년 2월 4일, 첫째는 군부 출신 대통령이 취임한 나라에서 태고의 울음소리를 냈다. 그렇게 참된 민주주의와 진보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1992년 12월 18일, 다섯 살이 된 첫째와 두 살이 된 둘째는 부모 손에 끌려 다시 그이의 유세장에서 민주주의와 진보, 통일의 외침을 자장가 대신 들어야 했다.

1997년 12월 18일 밤, 드디어 두 아이와 그들의 부모는 온갖 거짓과 비난, 오해와 무지의 파도를 이기고 한 나라의 지도자로 우뚝 선 이의 승리를 함께하였다.

광복된 지 80년이 되어가는 이 나라에 대통령은 여러 명이 존재했지만, 위대한 정치인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은 어쩌면 단 한 사람뿐이었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그만을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지역감정의 소산이야.”라거나, “너의 편견일 뿐이야.”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이니 “빨갱이”니 하는 비난이 지나고 보니 모두 거짓이었던 것처럼, 역사는 그가 “가장 위대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킬 것이다.

그가 지도자가 된 후, 우리 사회에서는 비로소 민주, 진보, 통일 세력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전에 대한민국에서 민주진보통일 세력은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다수를 차지하는 취약한 처지였다. 그 역시 보수의 심장 세력과 손을 잡아야만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는 우리 사회를 한 걸음 진보시켰다. 그는 대한민국 사회를 민주와 진보 세력이 다수를 차지하는 보다 앞선 사회로 개조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성과였으니, 나는 IMF 외환위기를 이른 시일 내에 극복시킨 그의 능력보다 이를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무엇보다도 그이에게 위대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까닭은 올곧은 자세 때문이다. 그이는 곡절이 지배해온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단 한 번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설사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릴 때조차 그이는 옆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이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유 역시 바로 그러한 인간적 자세 때문일 것이다. 시류에 영합하고, 죽음 앞에 타협하며, 자리를 위해 철학을 굽히는 이들이 난무하는 인류 역사에서 그이와 같은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러하기에 역사는 그러한 인물을 위인(偉人)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이가 태어나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 것이 분명한(이는 그이가 자신의 고향 마을 이름을 따 후광(後廣)이라는 호를 만든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고향과 같은 뿌리를 가진 땅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지금은 고향을 떠나 있지만, 그 땅의 말투와 그 땅의 음식과 그 땅에서 함께 살아가던 이들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의 뒤를 이을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한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배지와 자리와 돈다발과 명성을 한없이 가벼이 여기는 반면, 민주주의와 약한 이웃과 정의로운 역사의 무게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쓰러질지언정 그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는 후배 지도자를 기다린다.

그 후배가 그이와 한강의 뒤를 이어 다시 한번 세계에 호남의 가치를 펼칠 것을 믿는다.

김흥식 도서출판 서해문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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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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