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인 정치력 신장의 원년

2024-12-03

1980년대 ‘나성에서 온 편지’라는 노래가 있다. 미국 이민이 본격화하던 시절에 인기 있었던 대중가요다. 로스앤젤레스(LA)의 한자어 옛 이름인 나성에서 행복하라는, 이별의 슬픔과 애틋함을 느낄 수 있는 노래다. 사실 LA를 포함한 남가주는 하와이와 함께 초기 미주 한인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정착한 곳이다. 현재 LA총영사관이 관할하는 남가주에만 약 60만 명의 한인 동포들이 거주하며 세계 최대의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LA는 미주 독립운동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다. 상하이임시정부의 독립 기금을 지원했던 대한인국민회총회관 건물이 위치해 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옥은 현재 남가주대(USC) 한국학센터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1948년 11월 개관한 LA총영사관이 대한민국의 첫 재외공관인 것도 이러한 동포 사회의 저력이 바탕이 됐다.

120여 년의 미주 한인 이민사는 여러 부침을 겪으며 성장했는데 최대 시련이자 변혁의 계기는 1992년 4월 29일 발생한 LA 폭동이었다. LA 폭동은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흑인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 미국 사회의 모순이 드러난 사건이지만 한인 사회가 폭동의 최대 피해자였다. 그러나 한인들은 아픔에만 머무르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줄 알았다.

특히 4·29를 계기로 한인 사회는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을 깨닫고 당파성을 떠나 정치 참여를 본격화했다. 그 응축된 결과가 연방 상·하원 의원은 물론 법원과 지방의회·교육기관 등 미국 전역에서 선출된 수백 명 이상의 한인 정치인들일 것이다.

11월 선거에도 남가주 한인 정치인들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영 김(공화당·캘리포니아 40지구) 의원은 3선에 성공했고, 데이브 민(민주당·캘리포니아 47지구) 현 가주 상원의원도 승리해 연방 하원의원에 입성하면서 한인 커뮤니티의 자부심을 높였다. 한편 3선에 도전했던 미셸 박 스틸 연방 하원의원(공화당·캘리포니아 45지구)은 민주당의 베트남계 후보와 막판까지 격전을 벌였으나 안타깝게 이번 선거에는 패배했다.

연방 정치인 배출뿐 아니라 주의원과 선출직 공무원들의 성과도 두드러졌다. 주 상원의원은 물론 LA카운티와 오렌지카운티의 풀러턴·어바인·라구나우즈, 샌디에이고카운티의 칼즈배드 등의 시의원·교육위원 당선은 한인 사회가 미국 정치 무대에서 한층 더 확고한 위치를 구축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비록 일부 정치인은 낙선했지만 그들의 도전 정신은 한인 사회에 큰 교훈이 된다. 한인 커뮤니티가 초창기 이민자들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장을 거듭해왔듯 이번 도전이 앞으로 그들의 정치적 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특히 실패에 굴하지 않는 도전 정신은 차세대 한인들에게 귀감이 돼 더 많은 한인의 정치 참여를 이끌어낼 것이다.

LA총영사관은 한인 사회와 함께 동포 2·3세대들이 한인 정체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 동포 사회가 역량을 강화하고 더욱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응원할 것이다. 동포 사회가 향후 조국에 전달할 ‘나성에서 온 편지’에는 미국 사회 곳곳에서 한인 동포들이 다채롭게 활약하고 있는 성과들로 가득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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