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팅게일' 된 간호사, 한국 떠난다

2025-04-11

의정 갈등 장기화의 여파로 미국 등 해외 병원으로 떠나는 간호사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수술·입원 환자 수가 크게 줄며 경영난을 마주한 대학병원 등이 줄줄이 신규 간호사 채용을 중단해 고용 불안정이 심화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11일 서울경제신문이 분석한 최근 5년 사이 보건의료인 영문자격서 발급 현황에 따르면 간호사의 증명서 발급 건수는 2020년 871건에서 2024년 7232건으로 8.3배 뛰었다. 발급 건수와 증가율 모두 전체 업종 가운데 압도적 1위였다. 의사의 경우 247건에서 590건으로 약 두 배 늘었지만 증가율로 따지면 한의사를 제외하고 가장 낮았다.

해외 취업 동향을 가늠할 수 있는 다른 수치를 살펴봐도 간호사의 ‘탈한국’ 추이는 유독 뚜렷하다. 미국간호사국가시험원이 공개한 면허 시험 ‘엔클렉스(NCLEX)’ 응시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응시자 수는 2020년 198명에서 지난해 26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심지어 엔클렉스 시험은 국내에서 실시되지 않아 근처 일본·홍콩·대만 등을 다녀와야 하는데도 응시자가 13배나 늘어난 것이다.

특히 미국 간호사 면허를 ‘혹시 몰라’ 따두는 수준을 넘어 해외 에이전시와 채용 연계 계약을 맺고 출국까지 하는 행동파 수강생이 늘어났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강동엔클렉스 학원의 강 모 총괄실장은 “2023년 말부터 에이전시 계약자 수는 30~40명에서 100명대로, 출국자 수는 20명 내외에서 30~40명대로 늘었다”고 전했다.

간호사들이 급격히 해외로 눈을 돌린 데는 의정 갈등발 구직난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대한간호협회의가 발표한 ‘신규 간호사 채용 현황 3차 조사’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44개 병원에서 올해 신규 간호사로 채용한 인력은 2901명에 그쳤다. 2023년(1만 3211명), 전년도(8906명)보다 70~80% 가까이 하락한 수치다. 의정 갈등의 여파로 병원 대부분이 비상경영체계에 돌입하며 신규 채용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엔클렉스 면허를 딴 뒤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4년 차 간호사 A(27) 씨는 “전공의 파업 당시 인턴과 레지던트 일까지 떠맡게 된 간호사들의 심리적·육체적 부담이 커졌지만 인력 충원은 없어 노동 강도만 높아졌다”고 전했다. 퇴사하더라도 추후 재취업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업무 구분이 명확하고 보수도 많이 주는 미국행을 고려하게 됐다는 것이다. 엔클렉스 ‘3수’째라 항공편, 응시 비용에만 600만 원이 들었다는 2년 차 간호사 B(26) 씨도 “업무 강도 대비 낮은 급여, 장기간의 발령대기를 겪으며 해외 취업을 결심했다”면서 “지금 일하는 병원 간호사 10명 중 5명이 이미 엔클렉스를 땄거나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강 실장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면허 시험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이다. 간호대 학부생이 미리 문의하는 경우도 많다”며 “전공의 사태와 더불어 환율도 계속 오르다 보니 복합적으로 수요가 늘어난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집권을 계기로 간호사들의 ‘탈한국’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강 실장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비숙련 외국인에 대한 이민을 제한하면서 간호사 등 숙련 인력의 비자 승인 속도는 오히려 빨라졌다”며 “‘영주권 문호 기간’이 1년 반 대기를 예상했는데 4개월 만에 승인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이처럼 간호사들의 미국행이 지속될 경우 국내에서 균형 잡힌 의료인 수급 체계를 마련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이날 “숙련된 간호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6월 간호법 시행을 시작으로 열악한 근무 조건 등 고질적 문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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