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공지능(AI) 기반 콜센터가 금융권을 시작으로 보험, 통신, 유통 등 산업계와 공공기관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반복적인 고객 문의에 자동으로 응대해 상담 업무의 효율을 높인다는 취지에서다. 도입 기관과 기업은 상담 대기 시간 단축과 24시간 대응 체계를 이점으로 내세우지만, 실제 현장과의 온도 차는 뚜렷하다. 문제 해결 절차와 소요시간은 지연되는 반면 AI 봇 응대에 불만족한 고객 민원으로 일반 직원들의 감정노동 강도는 더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효율성’ 뒤에 인간 상담사들이 있다
“수화기 너머로 ‘(AI가 아니고) 진짜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왜 이렇게 연결이 어렵냐’ 욕을 먹으며 응대하기도 부지기수다. 온갖 업무를 콜센터로 끌어들여 업무 부담이 늘어난 와중에 서울 지역 상담사의 4분의 1을 감축하고 나머지는 대구 등으로 이전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교육청 산하 준정부기관인 한국장학재단은 공공기관 중 가장 먼저 ‘AI발 콜센터 구조조정’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말 공고한 새 위탁사 입찰 계약이 불씨가 됐다. 공고에는 재단이 민간업체에 위탁한 상담센터 상시 인력을 약 25%(서울 상담사 199명→148명) 줄이고 서울에서 근무하던 조직을 본사가 위치한 대구 등으로 사실상 이전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장학재단은 지난해 8월 공공기관 최초로 AI 기반 가상상담 서비스를 시행했다. 콜센터 서비스 전반에 가상상담과 예측다이얼시스템(PDS)이 적용됐다. 재단은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고객상담 일평균 건수가 2.8배, 상담원 1인당 고객 응대수가 3.3배 향상되고, 학자금대출 연체자 상환 안내에 적용한 결과 통화 연결 고객 중 91.5%가 상담사 연결 없이 가상상담으로 처리됐다”고 초기 성과를 밝혔다. 가상상담은 상담사 연결 없이 자동 발신된 콜만으로 고객에게 통화목적과 안내사항 등을 AI가 안내하는 서비스다. PDS에서는 자동 발신 콜 중 실제 고객이 응답한 경우에만 상담사가 연결된다.
전면 시행 7개월 만에 인력 감축이 현실화하자 상담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재단의 제안요청서와 입찰공고문에 따르면 위탁 사업은 올 6월부터 2년간 운영된다.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조 장학재단콜센터지회 측은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위탁업체가 바뀌는 시기에 온라인 공고 하나로 끝냈다”며 “대구 이전은 퇴사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AI, 문제 해결 대응력 떨어져 “진짜 고객 편의 맞나”
AI 도입을 통한 업무 자동화로 인력 구조가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은 산업계 전반에서 예측하는 대표적인 시나리오 중 하나다. 인건비를 가장 큰 고정비용으로 보는 기업들은 AI를 활용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인력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외부 하청이나 전문 자회사 구조가 대부분인 콜센터는 가장 빠르게 AI 의존도를 높여가는 영역이다. 소규모 업체들도 비용 부담 없이 콜센터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기업용 AI 서비스도 국내외 스타트업 사이에서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응대량이 많고 아웃바운드 콜 등 반복적인 업무 비중이 높다는 점 때문에 은행들은 일찍이 AI화를 진행했다. 공공기관도 민원 부서부터 AI 챗봇과 콜봇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앞서 국민은행은 AI 상담 확대 등을 이유로 콜센터 용역회사를 6개에서 4개로 줄이고 상담사 240여 명에게 ‘해고 예고 통지서’를 발송한 바 있다. 노조의 철회 요구에 부딪혀 고용 승계가 이뤄졌지만 유사한 상황이 각 분야에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된다.

정작 상담 업무가 이뤄지는 현장에서는 문제 해결 과정의 대응력이나 이용자가 체감하는 서비스 편의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아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사고 대응과 보험 출동, 긴급 상황 처리와 같은 보험 분야에서도 AI 상담사가 적용되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박영미 현대하이카 손해사정 콜센터 지회장은 “지난해 5월 AI 도입 이후 일반 콜센터 전화 접수 외에 모바일을 통한 자동화 접수가 시행되고 있다. 상담사 연결 없이 보험사 직원이 사고 현장으로 출동할 수 있게 했지만 고속도로의 경우 상담사 연결이 필요하다. 위치 파악도 제대로 안 되는 등 AI로는 완벽하게 일처리가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고 접수 후 ‘잘 신청됐냐’는 문의도 빈번하다. 담당자 배정 전 사고 발생 내용 등을 확인하기 위해 AI 음성봇이 고객에게 3회가량 전화를 거는데 이 전화를 놓친 고객들은 휴대전화에 찍힌 대표번호로 콜센터에 회신을 한다. 이를 설명하고 수습하는 건 일반 상담원 몫이다. 박 지회장은 “답답한 고객들이 많아지니 민원성 콜은 늘고 상담사들은 불만을 달래며 진을 뺀다. 고속도로나 차를 안전하게 정차해둘 수 없는 상황에서도 고객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절차가 늘어나며 안전 문제를 포함해 고객 편의를 제대로 고려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AI 콜센터 전환에도 반드시 수반되는 AI 학습과 추론, 판단 관련 데이터 문제는 또 다른 축이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이사는 “‘보이스 투 텍스트’ 변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KT의 경우 콜센터 직원들에게 상담 내용 확인 등 품질 관리 역할도 요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AI는 어떤 기술보다도 ‘영향성’이 중요하다. 기술 도입으로 근로현장 등 사람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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