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인 김모 교사는 4일 오전 출근하자마자 학생들의 질문 세례를 받았다. 전날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시간 만에 해제한 일을 두고 학생들이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학교에 1시간 가량 지각한 한 학생은 “밤늦게까지 뉴스 보다가 늦잠을 잤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교사는 “마침 1교시가 사회 수업이라 비상계엄에 관한 수업 준비를 해왔다”면서 “오히려 아이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서 모르는 척 지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민주주의 가르쳐야” 자발적으로 자료 나눈 교사들
이날 일부 학교에서는 이번 비상계엄에 관한 ‘계기 교육’이 이뤄졌다. 계기 교육이란 학교 교육과정 안팎의 의미 있는 주제를 특정 시기나 사건에 맞춰 다루는데, 교사 재량으로 시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어버이날에 효도를 주제로 수업하거나, 세월호 참사일을 앞두고 안전 교육을 하는 식이다.
제주 지역 한 5학년 담임교사는 “속보를 보자마자 정치와 민주주의, 삼권 분립을 주제로 수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마침 학교에 전교 어린이회 선거가 있어서 여러모로 빗대어 설명했다”고 했다. 경기 고양시의 한 고교 교사는 “평소 역사 과목에 관심이 크게 없던 학생들까지 역사 선생님을 찾아가서 ‘계엄령이 뭐냐, 수업 때 알려달라’고 해서 관련 내용을 다뤘다”고 했다.
직접 만든 수업 자료를 공유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교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인디스쿨’에는 비상계엄의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자료부터, ‘계엄 타임라인’을 정리한 자료까지 다양하게 올라왔다.
전국역사교사모임도 “역사 교사로서 책임감이 더욱 무겁게 여겨지는 아침”이라며 총 34페이지 분량의 프레젠테이션(PPT) 파일을 온라인으로 공유했다. 역대 계엄령 선포일과 내용, 전날 시민들의 반응 등을 담았다. 교사들은 “밤새 잠 못 자고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학생들이 집중해서 들었다”는 등 인사를 댓글에 남겼다.
소셜미디어(SNS)가 이번 일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의 한 초등 교사는 “학생들이 유튜브 쇼츠(짧은 동영상)에서 윤 대통령 발언과 국회 혼란 상황을 많이 살펴보고 학교에 왔더라”고 말했다. 경기도 한 특목고 교사도 “시험 기간인데도 학생들이 영화 ‘서울의 봄’이나 밈(Meme)을 언급하면서 계엄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한다”고 했다.
‘정치적 중립’ 우려도…전문가들 “시민 교육 일환”
다만, 교사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중립’이 고민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날 계엄 관련한 계기 교육을 준비한 한 초등 교사는 “이번 비상계엄에 관해선 누구라도 계기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할 것 같지만, 혹시 모를 문제의 소지나 민원 가능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수업에서 보여줄 방송뉴스 앵커 멘트까지 전부 미리 살펴봤다”고 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이번 비상계엄에서 본 일련의 일들은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의 소재”라면서 “여야가 어떠하다는 발언은 정치적인 평가로 읽힐 수 있기 때문에 헌법의 가치와 적법 절차, 역사 속 사례를 중심으로 수업을 풀어가는 게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말이 부담일 수 있지만, 해당 사안을 그대로 잘 설명해주는 것은 학생이 한 명의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교육이기 때문에 마냥 피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했다. 정일환 대구가톨릭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입법·사법·행정부가 상호 균형과 견제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시민의 자유를 지킨다는 내용은 교육과정에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