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지난 5년 새 국내 대형은행들의 여성 임원 평균 비중이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직원 비율이 2019년 절반을 돌파한 이래 올해는 55%를 넘어섰지만 여성 임원 비율은 여전히 7%대에 그쳤다. 최근 몇 년 간 대형은행들이 '여성 승진 한계선'을 타파하는 내용을 담아 '성 다양성' '인재 육성' 등을 외쳐왔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이 금융감독원에 공시한 '임원 현황'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이들 은행의 전체 임원 수는 139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KB국민은행이 46명으로 유일하게 40명을 넘어섰으며, 하나은행(35명), 우리은행(30명), 신한은행(28명)이 뒤를 이었다. 4대 은행의 여성 임원은 11명으로 두자릿수를 겨우 돌파했다. 비중으로는 7.9% 수준이다.
이는 5년 전보다 겨우 0.5%포인트(p) 높아진 수치다. 2019년 9월 말, 4대 은행의 전체 임원 121명 가운데 여성 임원은 9명으로 약 7.4%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 5년새 임원이 18명 증가했지만 여성 임원은 단 2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임원'은 은행장 등 사내이사, 사외이사, 부행장, 상무 등의 직위를 맡은 자를 말한다.
여성 임원 비중은 은행별로 차이가 컸다. 올해 9월 말 기준 국민은행이 전체 임원 46명 중 여성이 5명으로 10.9%를 기록해 가장 높았다. 우리은행은 30명 중 여성이 3명으로 역시 두 자릿수인 10%를 나타냈으며, 신한은행은 여성 임원 2명을 둬 7.1%였다. 하나은행은 2.9%로 가장 낮았다. 특히 하나은행은 전체 임원 수는 4대 은행 중 2등이었으나 여성 임원은 사외이사 단 '1명'에 불과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여성 임원 비중이 뒷걸음쳤다. 9월 말 기준 국민은행은 2019년 전체 임원 26명 중 3명을 여성으로 채워 비중 11.5%로 두 자릿수를 나타냈으나, 5년 만에 10.9%로 0.6%p 낮아졌다. 하나은행은 더 큰 폭으로 비중이 주저앉았다. 지난 2019년 임원 31명 중 여성이 2명으로 6.5%였으나 올해는 3%를 밑돌아 절반 이상 낮아졌다. 특히 하나은행은 5년 새 임원 수가 4명 늘었지만 여성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은 6.1%에서 7.1%로 1%p, 우리은행은 6.5%에서 10%로 3.5%p 올랐다.
지난 5년새 4대 은행의 여성 직원 비중은 증가했지만 여성 임원 비중은 여전히 7%대에 머물러있다. 2019년(9월 말 기준) 평균 51.8%이던 여직원 비중은 2024년(6월 말 기준) 55.4%로 3.6%p 높아졌다. 4대 은행 중 가장 직원수가 적은 하나은행을 기준으로 계산해도 432명 늘어난 규모다. 하지만 이 기간 여성 임원 수는 달랑 2명 증가했다.
시간이 흘러도 여성 임원 비중이 유의미하게 늘지 않는 데는 '직무'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은행 실적과 직결되는 대출, 영업 등의 업무와 이에서 파생된 대출 기획·심사 및 관리, 리스크 관리, 기관 및 기업영업 등은 여전히 남성 직원들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수익 기여도가 높은 직무에서 경력을 쌓고 우수한 성과를 만들어내야 임원직을 달 수 있지만, 여성 은행원들은 남성과 비교해 은행 수익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업무에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실제 4대 은행의 여성 임원 11명 중 5명은 사외이사로, 절반 가량이 은행의 핵심 업무와는 거리를 보였다.
한 대형은행 관계자는 "여성 임원 비중이 낮은 것은 여성 행원 대부분이 은행 수익에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주는 소비자보호 등 지원사업, 후선업무 등에 배치된 것과 연관이 있다"면서 "은행 핵심 직군인 전략, 재무 업무의 경우 여 행원의 퇴사, 육아 등을 고려해 여전히 암묵적으로 남성 직원들을 많이 배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평균 7%대 수준인 저조한 여성 임원 비중은 향후 여성 최고경영자(CEO) 배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에 4대 은행이 여성 인재를 적극 지원하고 CEO군으로 육성하는 데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은 재무, 영업, 리스크 관리, 지역 총괄 등 다양한 분야로 이들의 역할을 적극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현재 4대 은행의 여성 부행장 4명이 맡고 있는 직무는 소비자보호(2명), 디지털사업(1명), 자산관리(1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