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보수] 일반인이 가치를 생각할 때, 정치인은 이익을 계산한다

2024-07-02

# 보수는 1968년 경상도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인조반정, 병자호란을 겪으며 자리를 잡았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산모퉁이를 갈아엎어 밭을 만들고 움푹하고 습한 땅은 논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동서남북 10킬로미터 정도 거리의 10여개 자연부락 아이들이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보수네 집은 밭 가운데 있었고, 가장 가까운 동네가 200여 미터 거리에 있었다.

전교생이 250명, 한 학년에 한 반이었다. 보수는 백팩 책가방을 들고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몇 명' 중 하나였다. 허리에 책보를 묶고 고무신을 신은 아이들이 많았다.

배추값이 비싼 해에는 도시락에 김치 반찬을 싸가기 어려웠다. 부모님들은 자식 먹이기보다 시장에 내다팔기가 급했다.

보수는 서울 생활 경험이 있는 아버지, 어머니를 만난 행운아였다. 김치를 맘껏 먹을 수 있었고 계란 '후라이'를 도시락에 덮어서 가는 호사를 누렸다.

보수는 산에 가서 앉아 있기를 좋아했다. 높은 곳에서는 멀리 P시의 공장 굴뚝이 보였다. "중학교는 저기로 가고, 대학은 서울로 가야지" 가장 먼저 가진 목표가 '출세'였다.

# 보수는 86학번이다. 학원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학력고사 점수 맞춰서 들어간 대학은 그렇다 치고, 학과는 영 정이 들지 않았다.

전공 서적보다 대자보 읽는 게 더 재미있었다. 구구절절 옳은 말에 피가 끓었다. 친구 진보랑 같이 시위를 구경하다가 돌을 들었다. 알고보니 진보는 이미 써클에 가입한 상태였다.

시위가 끝나고 진보는 노란 점퍼를 입은 채로 교문을 나섰다. 신호등 건널목 건너편 사복 전경이 이쪽 정복 전경에게 노란옷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옆에 있던 보수는 놀라서 도망치려다가 같이 잡혔다.

짭새들이 끌고간 '닭장차'는 살벌했다. 돌로 맞은 상처를 치료하던 전경들이 너나없이 분풀이했다.

파출소는 분위기가 달랐다. '화이바'로 불리던 사복전경이 싸대기를 날리니 순경은 말렸고 둘은 시비가 붙었다. "나중에 알고서 데모해" 경찰서로 향하는 호송차 문 밖에서 순경이 걱정스런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 중고등생 시절 보수는 '무능한' 아버지를 원망했다. 왜 남들처럼 돈버는 요령이 없을까. 그토록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그러면서 맨날 술독에 빠진 모습은 더욱 지겨웠다.

'스무살' 보수는 이유를 알았다. 써클에 들고 세미나를 하면서 모든 게 자본주의 모순 탓이라는 걸 안 거다. 불편한 가정사의 근원적 배경이 계급 질서에 따른 사회적 모순에 있다고 생각됐다.

오십이 넘은 보수는 생각이 달라졌다. 사회 생활에서 투쟁으로 쟁취할 권리가 많지만, 긍정적인 접근으로 실마리를 찾는 게 더 큰 성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자주 본 거다.

가난과 질곡의 이유를 밖에서만 찾는다면, 남의 밥그릇과 행운을 빼앗는 것 외에 해결 방법이 없다. 그러한 인식이 고착된다면, 살아서는 한발짝도 '분노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일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의 '체인지 5분 비전 발표회'를 봤다. 보수가 생각하는 '보수'와는 뉘앙스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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