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이 가혹한 호적등본…생모는 첩, 직업 주막업 기재

2024-07-02

신복룡의 해방정국 산책

〈제5부〉박헌영, 한 공산주의자의 사랑과 야망

① 가족이라는 굴레

인물사, 전기학 연구의 어려움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충격을 받은 책 가운데 하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역사학자인 리튼 스트래치(LyttonStrachey, 1880~1932) 교수가 쓴 『빅토리아 시대의 명사들』(Eminent Victorians, 1918)이다. 그는 서문에 느닷없이 “역사가의 첫 번째 미덕은 주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글을 시작하는 것이다(The first virtue of historian is ignorance)”라는 구절을 넣었다. 머리가 띵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한참을 생각한 끝에 역사가가 어느 글을 시작할 때는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그 주제를 다시 공부하라는 뜻임을 알았다.

역사학 가운데 인물사 또는 전기학은 그 주제의 연구보다 더 어려운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데, 첫째는 문중의 시비며, 둘째는 지역감정이며, 셋째는 종교적 호교론(護敎論)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거기에 이념의 굴레라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 위의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감정을 건드리면 바로 사자명예훼손죄(형법 308조)로 고소당할 수 있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문중이 제소하면 고소가 성립되며, 확정판결을 받으면 징역 2년을 살아야 하는데, 공소시효는 3년이다. 신분에 약한 교수가 이런 송사에 휘말리면 고생이 말이 아니다. 인물사를 공부하는 나는 이 죄에 걸려 너무 시달려 이제는 그런 주제를 비껴가고 싶다.

문중이나 지방색 또는 이념 논쟁 문제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처음부터 아예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쓰거나 어느 종교를 감싸고자 쓰는 교파 문제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아예 처음부터 요절을 낼 각오로 쓰는 외삽법(外揷法)의 글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어디서 연구비라는 이름으로 몇 푼 받은 경우의 ‘역사업자들’이 쓴 글은 목불인견이다.

전기의 경우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역사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후손이 잘되면 붓으로 조상을 키운다”고 한다. 내가 13년 동안 한국독립유공자심사위원(장)을 지낸 경험을 되돌아보면, “오래 산 마지막 증언자나, 권력자 자식을 둔 사람이나, 부자의 목소리가 컸다”는 자조(自嘲)를 면할 수 없다. 그 역류를 비껴가는 것은 새로운 유공자를 발굴하기보다 어려웠다.

이번에 다루는 박헌영(朴憲永, 1900~56)의 경우는 위의 세 가지 경우와 조금 다르다. 그의 적이었든, 그의 숭모자였든 여기에는 생계형의 ‘꾼들’이 목을 매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역사의 좌우익은 불가피하게 나누어지기 마련이지만, 요즘처럼 이렇게 칼로 벤 듯이 갈라져 게거품을 무는 역사업자들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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