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유럽의 상호문화박물관

2024-11-20

‘박물관과 미술관 진흥법’ 제2조는 박물관을 “문화·예술·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는 시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같은 법 제4조는 박물관의 사업을, 자료의 수집·관리·보존·전시, 자료에 관한 강연회, 연구회, 전람회, 발표회, 감상회, 답사 등 실시, 평생교육 관련 행사의 주최 또는 장려로 열거하고 있다. 이 두 조항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박물관의 평생교육 기능이다. 박물관의 주된 기능은 예나 지금이나 늘 역사 유물을 수장 및 보호하는 것이지만, 21세기 다문화사회를 맞이하여 국내 외국인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들과 내국인 간의 상호문화대화를 위한 교육적 기능이 점점 강조되고 있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이런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는 박물관을 ‘상호문화박물관’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노르웨이 상호문화박물관으로, 1990년에 설립되어 2006년부터는 오슬로 박물관에 편입되었다. 이 박물관은 주로 노르웨이에 들어온 이민자의 역사를 수집, 보존 및 보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상호문화박물관의 설립 목적은 노르웨이 내 다양성의 역사를 전시하고 정주자와 이민자 간의 상호문화대화를 장려하는 것이다. 참고로, 상호문화대화는 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 간의 정중하고 개방적인 대화를 말한다. 예를 들어, 식기나 악기와 같은 보편적인 사물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게 함으로써 이들이 문화적 차이를 넘어 연대할 수 있게 만든다. 또 소수 민족 출신 예술가들이 기존의 네트워크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다른 갤러리나 박물관에 홍보한다. 시의회 관계자와 일반 학생들에게 상호문화적 인식과 능력을 신장시키는 특별 교육도 제공한다. 또한 노르웨이의 다양성을 연구한 오슬로 대학교 및 반인종차별 센터(Anti-Racist Centre)와 협력하여 공개 토론을 벌이고, 전시회, 토론 및 세미나를 통해 이민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미술 전시회, 공연 및 발표회(그림, 춤, 스토리텔링)를 개최하고, 도시의 다양한 지역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주선하고, 과거 및 현대 이민자 공동체와 정주자 공동체 간의 상호 영향을 소개한다.

2009년에 유럽에서 발간된 ‘상호문화대화를 위한 공간으로서의 박물관’이라는 보고서도 박물관의 교육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헝가리, 스페인의 박물관들이 상호문화대화을 어떻게 실시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소개한다. 그리고 박물관들이 상호문화대화를 실행할 때 유의할 점을 네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유럽 전역의 박물관들은 지역, 지방, 국가, 국제 차원에서 사회적 현안에 점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둘째, 박물관은 다양한 문화들을 기록하고 연구하고, 지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장소여야 한다. 셋째, 박물관은 과거와 현재, 정주자와 이민자 간의 ‘만남의 장소’가 되고, 양쪽 모두에게 낯선 ‘제3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넷째, 박물관에서 이루어지는 상호문화대화는 박물관을 기관-방문객-전시물이라는 3자(three-way)의 대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전국의 국공립 박물관을 지원하는 문화체육관광부도 박물관의 이런 교육적 기능에 주목하고 박물관들이 전시품을 통해 정주자와 이민자가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유도해 줄 것을 기대한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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