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7년 2월 26일 청년 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도쿄역에 급하게 내렸다. 명망 있는 영국인 수장가 존 갯즈비(John Gadsby, 1884~1970)가 은밀히 고려자기 컬렉션을 일괄 처분한다는 소식에 달려온 걸음이었다. 자택에서 만난 갯즈비는 총 22점 가운데 2점은 기념으로 남기길 원했고 간송은 나머지 20점(청자 19점, 백자 1점)을 그 자리에서 인수했다. 대금이 기와집(오늘날 아파트 개념) 40채 값이었다, 이를 위해 충남에 보유한 땅을 전부 팔았다 등의 설이 전한다. 이렇게 ‘간송 컬렉션’에 속하게 된 갯즈비 컬렉션 가운데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12세기) 등 4건이 국보, 3건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보화각)이 재개관 기획전의 네 번째로 오늘날 간송 컬렉션의 뿌리가 되는 동시대 수장가들의 면면을 조명한다. 오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열리는 ‘보화비장(葆華秘藏): 간송 컬렉션, 보화각에 담긴 근대의 안목’에는 위창 오세창(1864~1953), 석정 안종원(1874~1951), 존 갯즈비 등 7인의 수장가로부터 간송이 사들인 서화·도자기 가운데 26건 40점이 선보인다. 15일 언론공개회에서 김영욱 전시교육팀장은 “앞선 세 번의 기획전을 통해 보화각 설립과 안목(감식안)의 형성 등을 살폈다면, 본격적으로 간송이 수집했던 동시대 컬렉션의 특색과 경향을 돌아보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가령 구한말 민씨 외척 세력의 일원이던 민영익(1860~1914)은 개화기 정치가로서 근대 외교 현장에서 만난 중국 인사들의 작품을 수집했다. 특히 1884년 갑신정변 이후 상해로 망명해선 ‘천심죽재’라고 이름 붙인 거처에서 문인들과 교유하며 이른바 ‘천심죽재 컬렉션’을 형성했다. 여기엔 중국 송대~근대 서화뿐 아니라 추사학파의 서예도 포함됐고, 그의 사후 이병직(1896~1973), 윤희중(1901~1971) 등을 거쳐 간송에게로 일부 넘어왔다. 김영욱 팀장은 “광복 후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이 일찍이 ‘조선 미술시장에서 유통되는 중국·조선 서화는 모두 민영익과 오경석(1831~1879, 오세창의 부친)의 수장품에서 비롯됐다’고 했는데, 이들이 높이 샀던 추사 김정희, 겸재 정선 등의 작품을 간송도 구매·소장했다”고 말했다.


주목할 것은 이 같은 ‘컬렉션 계보도’를 작품 장황(표구)에 찍힌 인장(印章)을 통해 일일이 확인·재구성했다는 점. 가령 김홍도의 ‘단원산수일품첩’의 경우 화면 하단에 弘道(홍도) 인장이 있고 여백엔 각각 김용진(1878~1968)과 오세창을 뜻하는 인장이 찍혀 있어 간송의 입수 경로가 파악된다. “보화각 재개관을 계기로 소장 유물(1만 건 이상)을 전수조사하고 수장 경위를 총정리하는 작업”(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의 일환이다.
이를 통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수장가들의 면면도 확인했다. 예컨대 갯즈비의 경우 일본에 체류하며 고려청자를 집중 수집했던 영국 출신 변호사란 것 외엔 정보가 거의 없었다. 미술관 측은 영국을 방문해 갯즈비 유족을 만나고, 미국·일본 주요 도서관을 뒤져서 그에 관한 기록을 죄다 찾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미국 의회도서관에 소장된 갯즈비 추정 사진을 처음 공개했다. 훗날 아내가 되는 일본인 소프라노 하라 노부코와 교제 시점(1915~1920년)에 하라의 곁에서 피아노 반주하는 모습이다.

이번 전시에선 눈 밝은 수장가들이 어떻게 작품들을 대물림 했는지 살피는 것 외에도 이들 컬렉션이 흩어지는 과정에서 격동의 근대사를 읽어낼 수 있다. 가령 조선중앙일보의 실제 사주였던 충남 갑부 윤희중의 경우 1936년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올림픽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인해 신문이 폐간되자 고향으로 내려가 은밀히 상해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고 일부 정리 후 남은 유물(21건 22점)은 기탁해 현 국립공주박물관의 설립에 기여했다.
영국인 갯즈비도 일본이 1936년 2·26 사태(군인들의 쿠데타 불발) 이후 급격히 군국주의로 향하는 걸 보면서 조만간 영·미와의 전쟁을 직감하고 컬렉션 처분에 나섰다고 한다. 자신의 수장 과정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았던 간송은 ‘갯즈비 컬렉션’ 인수에 대해선 유일하게 잡지 글로 밝혔는데, 이에 따르면 갯즈비는 마지막 인사말을 이렇게 했다. “한국의 자기를 한국의 수집가인 귀하가 한국으로 도로 가져가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신태양』 1957년 9월호, 고미술품수집비화 ‘쫀·갇스비氏 이야기’)



2층에서 시작해 1층으로 이어지는 관람 동선에서 만나는 첫 작품은 1946년 심산 노수현이 간송에게 선물한 ‘무궁화’다. 전인건 관장은 “할머니(간송의 아내)가 따로 보관하신 걸 광복 80주년을 맞아 이번에 보존처리하고 첫 공개한다”면서 “작품 한쪽에 적힌 애국가 후렴구(‘대한사람 대한으로 기리 보존하세’)가 마치 간송의 문화보국(文化保國) 신념을 대변하는 듯하다”고 소개했다. 매주 월요일 휴관, 성인 관람료 5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