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긍정을 위한 부정

2025-02-17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누구나 인정받기를 기대한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가장 명확한 증거이기에 자기를 인정해주는 주군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적과 싸우는 장수가 역사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장수는 주군으로부터 ‘긍정(肯定)’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어제의 자기를 ‘부정(否定)’하고 실력을 연마한다. 타인의 긍정을 얻기 위해서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1980~1990년대엔 세상에 관심이 있었던 학생들 누구나 그러했듯이 전공 교과서보다는 사회과학 서적을 더 열심히 읽었다. 지금은 거의 유물(遺物)로 취급받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유물론(唯物論)이 대세였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읽으며 세상을 이해하는 몇가지 법칙을 공부했는데, 그중 하나가 ‘부정의 부정(Law of negation of negation)’의 법칙이다. 이는 자연은 변증법적 부정을 통해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끊임없이 발전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아이가 태어나면 기고, 걷고, 뛰는 식으로 근육과 시각이 발달하는 과정, 농업에서는 한톨의 볍씨가 싹이 되고 그 싹이 성장해 더 많은 볍씨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그럴듯하다. 흙에 뿌려진 볍씨가 스스로를 긍정해 싹으로 발달하지 못하면 흙 속에서 썩어 없어지지만, 볍씨가 스스로를 부정해 벼로 성장하면 더 많은 볍씨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아픔도 권력을 위임받은 위정자들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 자기부정을 선택하는 대신 타인 부정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타인을 부정한다고 해서 자기가 긍정되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우리 농업도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경제 성장이 궤를 같이해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녹색혁명을 통해 쌀 부족을 해소했고, 백색혁명으로 신선한 채소를 사계절 즐길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농업기술은 새로운 농업기술로 대체됐는데, 이는 우리 농업이 자기부정에 꽤 성공했다는 의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토양 훼손, 수질오염, 양분 과잉, 잔류농약 등의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최근 우리 농업의 가장 큰 사회적 화두는 ‘양곡관리법’일 것이다. 소비량보다 많은 쌀이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의무 수입돼 공급되니 소비자는 맛있는 밥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지만, 쌀 생산 농가의 소득은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정부는 벼 재배면적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쌀을 하나의 상품으로 본다면, 재고량이 많을 때 공장 가동률을 낮추는 방식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장을 멈추는 동안 직원들에게 유급휴직을 제공하는 것과 유사하게 기존 쌀 생산 농가의 소득 지원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농업 생산적 측면에서는 벼 표준 질소 시비량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자기부정을 통해 1㏊(3000평)당 15㎏에서 11㎏, 그리고 현재 9㎏으로 낮아진 것처럼 이제는 7㎏ 수준으로 낮추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질소 시비량이 낮아지면 벼 수량은 다소 감소하더라도 품질은 좋아지고 잡초와 병해충, 그리고 기상재해에 더 잘 견딜 수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시비량이 줄어들면 토양 훼손과 수질오염, 온실가스 배출 등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쌀 생산 자체가 부정당할 소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농업 스스로가 쌀 생산 방식을 바꿔나갈 수 있도록 고민할 필요가 있다.

최우정 전남대 지역바이오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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