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비례선발제만으론 명문대 가려는 사교육 못 줄여

2025-03-26

사교육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3월 둘째 주가 되면 교육부는 바쁘고 초조하다. 지난해 교육부의 성적표를 받기 때문이다. 매년 3월 둘째 주에 통계청의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가 발표된다. 올해는 총 사교육비 29조2000억원, 전년 대비 증가율 7.7%, 1인당 사교육비 증가율 9.3%다. 그리 우수한 성적은 아니다. 그런데 이 성적표에는 ‘4세 고시’ 등으로 표현되는 취학 전 영유아 사교육비와 N수생 사교육비가 빠져 있다. 이런 사교육비까지 모두 합치면 우리나라는 사교육에 너무 큰 비용을 쓰는 듯하다. 사교육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생각해볼 때다.

공교육 강화 등 수요 억제 위주의 기존 사교육비 대책은 효과 없어

수도권 대학 정원 늘리면 입학경쟁률 하락으로 사교육비 줄어들어

비수도권 명문대 육성은 국가 균형발전과 사교육비 모두 잡는 묘책

초·중등 교육에 과도하게 투입하는 재정을 비수도권대 지원에 써야

3월이 되면 바빠지는 교육부

이런 질문을 해보자. 우리 부모들, 더 직접적으로 나는 자녀에게 왜 사교육을 시키나? 많은 부모가 그렇듯, 나는 내 자녀가 좋은 대학에 진학해 자립할만한 일자리를 구하도록 돕기 위해 사교육을 시킨다. 여기서 핵심어는 ‘대학’과 ‘일자리’다. 일자리 문제는 노동시장, 산업구조, 전체 경제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교육부 정책만으로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좀 더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대학’으로 질문을 집중하자.

부모는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왜 사교육을 시키는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공교육만으로 좋은 대학을 쉽게 갈 수 있다면 부모들은 굳이 사교육을 활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공교육의 질 향상이 흔히 사교육 대책으로 이야기된다. 공교육이 좋아지면 모든 학생의 성적이 향상된다. 그런데 좋은 대학 입학은 지원자들의 상대 순위로 결정된다. 모든 학생의 성적 향상은 모든 학생의 성적 하락과 결과적으로 동일하다. 공교육의 질 향상이 사교육을 줄이지 못하는 이유다. 대학 입학을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로 정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100명의 입학생 정원이 정해져 있는데 500명이 지원하면 절대평가를 통해 어떻게 입학을 결정하나? 대학이 100명보다 많이 뽑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절대평가는 절대 불가능하다.

만약 대학이 100명이 아니라 250명을 뽑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절대평가가 가능하다. 상대평가를 쓰더라도 경쟁률이 5:1에서 2:1로 하락하기 때문에 좋은 대학 입시 경쟁은 감소한다. 경쟁률이 하락하면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지출을 줄일 것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더 쉬워졌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 입학경쟁률 낮추려면

결국 사교육비 문제는 좋은 대학 입학경쟁률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경쟁률이 높으면 사교육비는 높고, 경쟁률이 낮으면 사교육비는 낮다. 결국 ‘사교육비를 어떻게 줄일까’는 필연적으로 ‘좋은 대학 입학경쟁률을 어떻게 낮출까’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간단한 산수를 해보자. 대학 입학경쟁률은 ‘지원자 수/입학 정원’으로 정의된다. 지원자 수는 학생들의 입학 수요를, 입학 정원은 대학의 입학 공급을 표현한다.

전통적으로 우리 정부는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입학 수요를 줄이는 수요 억제 정책을 채택해 왔다. ‘사교육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공교육을 강화하고 대학입시 제도를 개혁하고 대학을 평준화하는 방안이 전통적인 사교육 대책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런 수요 억제 정책들이 사교육 절감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안다. 경쟁률의 분자인 입학 수요를 억제하기 어렵다면, 분모인 입학 공급을 늘리는 방안은 어떤가?

나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좋은 대학의 공급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수도권 대학들을 활용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비수도권에 좋은 대학을 육성하는 방법이다. 첫째, 1980년대 초반부터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 대학들의 입학 정원은 대학이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8조에 의해 수도권 대학의 입학정원은 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총량규제의 적용을 받는다. 또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 제24조는 ‘수도권에서 대학 및 교육대학의 입학 정원 증가 총수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수도권정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한다’고 규정한다. 1983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시행된 이래 수도권 대학들의 정원은 이처럼 법률의 규제를 받고 있다. 수도권 인구가 1983년 1500만 명에서 2023년 2600만 명으로 1.7배 증가할 때 수도권 4년제 대학의 입학정원은 10만4000명에서 11만9000명으로 1.1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진학 수요가 높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입학정원은 1983년 8만1875명에서 2023년 6만7037명으로 오히려 줄었다(그래픽 참조). 수도권 대학의 입학경쟁률이 높고 사교육비 또한 높은 현상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수도권 대학들에 대한 정원 규제를 완화해 경쟁률을 낮추고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 박윤수·강창희·고영우의 2018년 KDI 보고서(대학규제와 사교육에 관한 연구)는 1990년대 중반 5·31 교육개혁에 의해 4년제 대학 입학정원이 증가하자 사교육비가 줄어들었다는 실증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1990년대 중반 교육개혁의 실증 효과

둘째, 비수도권 대학들이 명문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는 과감히 재정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의 입학 정원이 늘어나면 비수도권 대학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국가 균형 발전이 우리 사회가 추구할 중요한 가치이고, 비수도권 명문 대학 육성은 사교육비 절감만큼이나 핵심적인 교육정책 목표다. 명문 대학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나는 이 재원의 일부는 수도권 대학들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을 비수도권 대학으로 이전시키는 방법으로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원 규제 완화를 통해 수도권 대학들에 자율권을 주는 대신 이들에 대한 정부 재정 지원은 점차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전체 교육재정은 초·중등교육에는 과도하게, 고등교육 부문(대학 및 전문대학)에는 과소하게 투입되고 있다. 2021년 현재 한국의 초·중등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1만7082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만2703달러)의 1.7배이고 38개 OECD 국가 중 3위다. 반면에 한국의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1만552달러로 초등학생보다 낮고 OECD 평균(1만4077달러)의 0.7배, OECD 국가 중 31위다. 이렇듯 불균형적으로 배분되고 있는 현재의 교육재정을 두 부문 사이에 균형이 맞도록 재배분할 필요가 있다. 이때 발생하는 고등교육 부문의 재정 여력을 비수도권 명문 대학 육성에 사용할 수 있다. 비수도권 명문 대학 육성은 국가 균형 발전과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묘책이다. 최근 교육부가 준비하고 있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나 학자들이 제안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은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비수도권의 명문 대학 육성은 수도권 정원 규제 완화와 함께 추진되어야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두 지역의 대학들 사이에 대학 교육 혁신을 위한 생산적인 경쟁이 이루어져야 좋은 대학이 많아지고 입시경쟁이 완화되고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폭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지역 비례선발, 정원 확대와 같이해야

최근 우리 교육문제의 새로운 해법으로 ‘대학 지역 비례선발제’가 논란이다. ‘지역 비례선발제’는 부유층 지역의 높은 부동산값을 낮추고 중산층 지역 자녀들의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고자 한다. 중산층 지역에 명문대 입학정원을 많이 할당하면 이 지역 학생들의 명문대 입학경쟁률은 하락하고 사교육비도 감소할 것이다. 인구 이동이 없는 경우, 부유층 지역에서는 감소한 입학정원만큼 명문대 입학 경쟁률이 상승하고 사교육비도 상승할 것이다. 부유층 지역의 사교육비 상승분과 중산층 지역의 사교육비 하락분 중 어느 쪽이 클까? 두 개의 크기가 유사하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나는 부유층 지역의 상승분이 더 클 것으로 추측한다. 이 지역 부모들은 사교육에 사용할 더 많은 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유층 지역 부모들이 사교육비를 더 쓰는 대신 자녀를 중산층 지역으로 유학을 보낼 수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하든 명문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전체 국민이 부담하는 총비용은 늘어난다. ‘지역 비례선발제’는 사교육비의 관점에서는 제로섬 게임이거나 네거티브섬 게임일 가능성이 높다. ‘지역 비례선발제’를 입학정원 확대와 결합하면 어떨까? 이 경우 ‘지역 비례선발제’는 포지티브섬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사회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쓸 수 있는 세 개의 수단이 있다. 시장, 법·제도, 정부 재정이다. 저소득 문제를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는 시장을 활용해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빈곤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2025년 현재에도 저소득 문제는 심각하다. 시장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최저임금제(법·제도)와 저소득층 소득 지원(정부 재정)을 혼용해 이 문제에 대응한다. 시류에 따라 각 수단의 가중치가 변하지만 이 세 개를 혼용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우리의 대학 부문은 오랫동안 법·제도에 의해 규제됐다. 수도권 정원 규제(수량규제)와 등록금 규제(가격 규제)를 생각해 보라. 사교육비 문제의 해법으로 법·제도는 줄이고 시장과 정부 재정의 기능은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볼 때다. 수도권 정원 규제 완화는 법·제도를 줄이고 시장을 활용하는 것이고, 비수도권 명문 대학 육성은 정부 재정을 활용하는 것이다. 사교육비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가진 무기들의 황금비율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창희 교수=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중앙대에서 노동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노동과 교육정책을 주로 연구한다. 『정책의 시간』 등을 함께 썼다.

강창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사교육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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