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아체육은 완전히 방치됐다. 출생부터 ‘움직임’을 배워야 하는데 국가는 아무것도 안 한다.”
국내 영유아체육 최고 전문가 전선혜 중앙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가 토로한 말이다.
전 교수는 최근 학교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영유아 체육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시스템도 없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유아체육학·스포츠심리학 연구에 평생을 바쳤고 유아 및 유소년 신체활동과 놀이 중심 체육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해 왔다. 전 교수는 한국유아체육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전 교수는 유아를 단순히 ‘보육의 대상’으로만 보고, 움직임과 신체활동을 교육으로 보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전 교수는 “아이 낳고, 놀고, 자랄 공간이 없고 정부 부처 간 협력도, 책임도 없다”며 “이번 정권에서도 체육 전반이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특히 영유아 체육은 완전히 소외된 분야”라고 지적했다.
이번 정권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에는 유아 체육이 성인과 구색 맞추기식으로 들어갔다. 한쪽짜리 체육 분야 국정과제 속에 “전 국민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유아부터 어르신까지 맞춤형 스포츠 활동을 지원한다. 유아친화형 스포츠 교실, 청소년 방과 후 스포츠클럽, 파크골프장 등 어르신 선호시설을 지원한다”는 식으로 들어간 게 전부다. 과거 오랫동안 반복돼 온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문구가 표현만 바뀐 셈이다. 그 외 영유아 관련 정책도 식생활 돌봄, 생애주기별 자산형성 지원, 무상교육 확대, 건강관리 지원 등 새로운 게 없다. 전 교수는 “저출생, 결혼기피, 고령화 시대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정말 중요한 정책이 영유아 체육”이라며 “보건복지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부처 개별 사업도, 함께하는 사업도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도 실질적 논의나 실행은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는 2023년 12월 스포츠기본법 시행령에 따라 국무총리 공동위원장 등 최대 25인으로 구성되는 범부처 위원회다. 출범 당시 구성·운영을 둘러싼 잡음이 많았고 이후에도 유의미한 활동이 거의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정부는 ‘유보통합’을 선포했다. 지금까지 따로 운영되는 유치원(교육부)과 어린이집(보건복지부)을 하나로 묶어, 0세부터 5세까지 아이들이 같은 기준으로 돌봄과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려는 정책이다. 전 교수는 “어린이집 교사나 보육 도우미들을 탓할 것이 아니다”라며 “그분들은 영유아 체육 교육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교육이 아니라 케어에만 머물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전 교수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야외활동을 하라’고 하지만 마땅한 공간이 없어 산책, 소꿉장난 등 소근육 운동이 대부분”이라고 “학교와 지역사회가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을 영유아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하고 교사들에게 체육 지도자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영유아 체육 활동에 대한 무관심한 이유를 전 교수는 선거제도에서 찾았다. 전 교수는 “영유아는 선거권이 없으니 정권도 관심이 없다”며 “반면, 투표권을 가진 노인들을 위한 체육정책은 부처 간 중복된 사업까지 많다”고 부러워했다. 전 교수는 “출생률이 세계 최저 수준인데 정부는 영유아 정책에 무관심하다”며 “우리의 미래인 영유아는 정부가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분야”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부모 의식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운동이 아이의 사회성, 정서, 두뇌 발달 등에 무척 중요한데 부모들은 정작 체육을 간과하고 있다”며 “영유아들을 영어 학원에는 보내면서 신체활동은 경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부모부터 직접 아이와 놀고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결국 ‘부모 교육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뛰노는 게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라며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놀면서 자기 몸을 지키는 법,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법 등을 배운다”고 전했다. 핀란드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가핵심교육과정에 따라 놀이 중심으로 영유아 교육을 접근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파트 건설 시 놀이터 설치가 의무화됐다. 전 교수는 “놀이터 모양이 다 똑같은 게 문제”라며 “아이들 눈에는 재미도 없고 창의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요즘 놀이터 개념은 ‘인생을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위험을 안전하게 경험하고 대비하는 준비를 하는 곳’이 됐다”며 “넘어져 봐야 다치지 않을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도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전 교수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에서 신체활동을 꺼려하는 분위기도 안타까워했다. 전 교수는 “신체활동 중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을 교사가 져야 하니까 교사들이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를 꺼린다”며 “사고 책임 소재 등을 논의해 사회적인 공감대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늘봄(방과 후 돌봄)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적잖은 초등학교들이 방과 후 돌봄 프로그램을 체육 종목 단체에 맡기고 있다. 전 교수는 “영유아에 맞는 체육시설도 없고 지도자 역량도 부족하다”며 “영유아, 어린이 체육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지도자, 교사들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영유아 신체활동이 너무 중요한데 정부는 방관하고 부모와 교사는 서로 불신하고 있다”며 “유아체육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국가가 책임지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