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고령자 운전면허 반납> 이동권 보장이 우선이다

대한민국의 전 연령 대비 65세 이상 고령자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은 2021년 기준 44.41%로 OECD 국가 중 일본과 아이슬란드에 이어 3위 수준이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고령화시대 고령자 교통사고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시도별 65세 이상 고령자 교통사고 비율은 2023년 기준으로 전남(26.05%), 경북(25.55%), 전북(25.13%)이 가장 높고, 세종(14.92%), 인천(15.96%), 경기(17.25%)가 가장 낮았다.
정부가 자발적인 ‘면허 반납’을 지원한다는 방침이지만 이에 호응한 고령자는 100명 중 3명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고령 인구 비중이 큰 농촌지역이나 읍·면 지역일수록 대중교통편이 열악한 상황에서 면허 반납을 유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고령 운전자의 인지 위험성을 고려해 70세 미만은 면허 취득 후 10년 단위로, 75세 이상은 3년 주기로 시력과 팔·다리 등 신체 능력 등을 확인하는 면허적성검사제를 운용하고 있지만 이런 검사가 실제 사고 위험을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30%에 육박한 일본이 2022년 ‘75세 이상자 중 최근 생일로부터 160일 전 3년간 교통 법규를 위반한 전적이 있는 사람’에 대해 인지능력 검사와 운전기능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면허를 갱신해주는 제도를 도입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고령자 면허·교통사고 비율 모두 증가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 비율은 2010년 5.6%(전체 교통사고 22만6천건 중 1만6천건)에 불과했으나 2020년 14.8%(20만9천건 중 3만1천건)로 증가했고, 2023년에는 20.0%(19만8천건 중 2만9천건)까지 올랐다.
고령 운전자의 면허 소지 비율도 증가하는 추세다.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운전면허 소지자 중 65세 이상 비율은 2020년 11.1%(3천319만명 중 368만2천명)에서 2023년 13.8%(3천442만6천명 중 474만7천명), 지난해 14.9%(3천470만7천명 중 516만6천명)로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주민등록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20%를 기록하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계속해 고령 운전자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향후 2050년에는 운전면허 소지자가 31.1%(983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인지 능력과 판단력, 감각 능력이 건강한 고령 운전자보다 떨어져 사고 가능성이 2~5배 높은 것으로 알려진 치매 인구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 치매 인구는 지난해 100만명을 넘어섰고, 2050년에는 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연간 면허 반납자 2% 수준 불과
현재 정부나 지자체는 고령 운전자들로 인한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하고 있지만 이들의 면허 반납비율은 극히 저조해 제도보완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사고예방을 위해서는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이 최선이지만 이는 이동권과 맞물려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중교통 체계가 열악한 농어촌지역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난해 전국의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률은 2%대 초반으로 매우 낮다. 농어촌 지역의 반납률은 더 저조해 1% 중반에 머문다.
최근 3년간 전북지역 고령운전자 면허 소지자수는 2022년 17만9천820명, 2023년 19만1천690명, 2024년 20만7천620명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면허 반납자수는 2022년 3천652명, 2023년 5천131명, 2024년 4천434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준 전체 면허 소지자 수의 2.13% 수준이다.
#이동권 보장·제도 보완 필수
전북도는 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고령운전자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있다.
전주시는 내년부터 ‘고령운전자 면허반납 인센티브 지원사업’을 추진해 운전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선불카드를 제공해 선택의 폭을 넓혀 나갈 방침이다.
전주시는 지난 2020년부터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만 70세 이상 고령자에게 20만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를 지원해 왔다. 올해까지 혜택을 받은 고령운전자는 6천539명으로 집계됐다.
익산시도 20만원을 교통카드로 지급하고 있고, 남원시는 현금으로 2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이외 지자체는 부안군이 30만원, 각 지자체는 20만원을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하고 있다.
지자체 공무원들도 “단순히 현금을 지급하며 면허 반납을 유도하는 지금의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면서“이동권을 보장하는게 선행돼야 하고, 나이 기준보다는 고위험 운전자를 가려내는 운전 범위를 제한하는 제도 마련과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지원 등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농어촌은 수요응답형 교통체계 구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대중교통편이 충분치 않은 중소 도시나 읍·면 등지에 사는 고령자는 자가용이 없으면 이동권 자체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 비상제동장치 장착 의무화 필요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현재의 인센티브 지급액과 일회성 지급만으로는 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시군에서 추가 인센티브를 주고는 있으나 일회성 인센티브만으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운게 사실”이라며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줄지않고 있는만큼 국가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어르신들은 대중교통 이용을 어려워해 자차 이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운전면허 적성검사와 면허 갱신 시 고령자들의 운전 능력을 실질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절차가 더 까다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고령자들의 운전을 막을 수 없다면 안전 운전을 지원하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일본은 2022년 5월 페달 오조작 급발진 억제 장치와 비상 자동제동 장치, 차로 이탈 보조 장치 등을 탑재한 차량에 한해 면허를 주는 ‘서포트카 한정 면허제’를 도입했는데 이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서포트카 외에도 모든 신차에 비상 자동제동 장치를 장착토록 하는 방식으로 서포트카 한정 면허제를 계속 보강하고 있다”면서“ 2020년 4월 말 기준 일본에서 출고된 신차의 비상 자동제동 장치 장착률은 90%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이병주 선임기자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