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조현병 대표님은 일이 약

2024-07-26

#고백하건대, 기자는 사별의 과정을 낱낱이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6년 전 친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 사별자가 된 강원영(32·가명)씨에게 그랬습니다. 원영씨의 눈빛은 흔들렸습니다. ‘그날’을 떠올리기란 힘들겠죠. 그러다가 눈빛은 잠잠해졌습니다. 그는 밥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친구가 김밥이라도 같이 먹자며 자조모임(비슷한 아픔을 토로하는 모임)에 데리고 갔다면서요. “사실, 전 김밥보다 집밥이 더 좋은데 말이지요. 하하하!” 다행이었습니다. 자살 사별자는 으레 애도 과정을 거칩니다. 애도는 슬픔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원영씨처럼 삶을 이어가는 과정도 해당합니다.

마음 무너지고 애도 중인 이들

일 외에도 말·쉼…도움 받아야

#밝히자면, 그 남자를 만난 건 복도만이 아니었습니다. 화장실에서도 그는 제게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라고 물어봤습니다. 벽을 한참 응시해야 하는 상황. 다시 한번의 물음이 제게 다가왔고, 얼마 지나서야 제가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고양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안내를 맡은 남성은 그렇게 ‘말’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조현병을 앓습니다. 타인과의 말 섞음은 대인기피를 하게 되는 그에게 묘약과도 같습니다.

2022년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12.1%에 불과합니다. 중앙SUNDAY가 한국심리학회와 공동으로 ‘조사연구컨설팅 올림’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국민 42.6%가 최근 2주간 최소한 한 번은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현실에 비춰 우리는 ‘위험수위 다다른 국민 정신건강’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중앙SUNDAY 6월 22일, 7월 13일 자〉

지난 2개월간 우리는 서른 명 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안내 남성처럼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원영씨처럼 자살 사별로 애도에 잠긴 이들이었습니다. 우울과 불안·스트레스를 넘나들고 있는 자립준비청년과 과로 중년들도 있었습니다. 미처 시리즈에 담지 못한 내용, 혹은 뒷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조현병 환자에게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요. 정신장애인 인권단체 파도손의 이정하(53) 대표는 ‘너무나’ 반듯했습니다. 그는 20여 년간 파도처럼 몰아치는 환각과 환청·망상의 망망대해에 빠지고는 했답니다. 그는 ‘일’이 자신을 살린다고 했습니다. 미술로 조현병 환우들에게 새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일을 더 하고 싶은데, 정신질환 병력은 그에게 운전면허증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기동력이 떨어지지만, 걷는 걸 좋아하게 됐어요. 등산이 취미가 됐어요. 운전면허증을 못 따는 현실이 답답해도, 좋은 취미가 생긴 것 같아요”라며 그는 웃었습니다. 일과 취미는 그에게 약이었습니다.

#신혜인 서울 동작구 보건소 주무관은 고심에 고심을 더했답니다. 그는 “마음이 불편한 분들은 말을 하고 싶은데도, 선뜻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연결고리를 만드는 게 제가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죠? 언제든지 연락해요’ 등의 글귀가 대방근린공원 용마산 11개 팻말에 담겼습니다. 신 주무관은 말했습니다. “팻말이 단순하고 친근해야 마음도 움직일 것 같아요. 도움이 꼭 필요한 분들입니다.”

#김모(32)씨는 조울증입니다. 그는 이달부터 시행 중인 ‘전 국민 마음 투자 지원 사업’에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경증이라 대상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많은 전문가는 ‘국가가 국민의 정신건강을 돌본다’는 사업 취지에 동감했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대상자가 제한돼 있다는 점, 사업의 지속 가능성 불투명”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의 피로골절은 서서히, 작은 데서 시작합니다. 이태원 참사 같은 국가재난이나 자살처럼 문득, 크게 오기도 하죠. 누구나 상처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한 심리상담가는 이렇게 말했죠. “기자들도 일단 쉬시고 예방 차원에서 상담받아 보시죠.” 알겠습니다. 주말엔 쉬면서 이정하 대표처럼 산에 갈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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