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키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이 주춤하는 사이 독창성과 진정성을 무기로 한 인디 스포츠 브랜드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스포츠 용품 시장 구조가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최근 발행한 ‘스포츠산업 이슈 리포트’에서 송상연 동덕여자대학교 국제경영학과 교수와 이제경 벨로시티(VLCT) 대표는 공동 저자로 참여해 이러한 흐름을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조명하며, 국내 스포츠 용품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리포트에 따르면, 나이키의 쇠락은 단순한 경기 불황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 우선 최근 나이키의 신제품이 혁신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과거 인기 제품 시리즈를 반복적으로 재출시하는 전략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소비자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이키의 독점적 시장 지위가 약화되며, 틈새를 공략한 인디 브랜드들이 자신들만의 스토리와 전문성, 감성을 무기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송 교수는 “과거 마이클 조던을 활용한 스타 마케팅과 TV 중심 매스미디어 전략이 막강한 효과를 발휘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며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미디어 환경을 재편하며 소비자가 콘텐츠의 주체로 부상했고, 브랜드 진정성과 개인화 가치가 브랜드 선택의 핵심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인디 브랜드로는 호카(Hoka), 온러닝(On Running), 룰루레몬(Lululemon), 라파(Rapha), 알로요가(Alo Yoga) 등이다. 이들은 스타 이미지에 의존하기보다는 실제 소비자와의 접점을 중시하고 있으며, 기능성과 감성을 조화롭게 결합해 독창적인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 대표는 “MZ세대는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며, 순간의 즐거움을 소비하는 ‘리퀴드 소비’와 ‘토키소비’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제품 자체보다는 브랜드와 함께하는 경험, 감정, 기억을 중시하는 소비문화는 스포츠 브랜드에도 새로운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는 기능성과 성능을 넘어 감성적 유대와 사회적 가치로 확장되고 있다. 리포트는 이러한 변화가 ‘체험경제’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소비자는 브랜드의 일방적인 메시지가 아닌, 자신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원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소비자가 브랜드 공동 창작자로 작용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커뮤니티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러닝크루, 사이클링 클럽, 요가 스튜디오 등 특정 스포츠 커뮤니티는 브랜드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제품에 대한 피드백과 경험을 공유하고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고 있다. 저자들은 라파의 ‘클럽하우스’, 룰루레몬의 ‘에듀케이터’ 프로그램 등을 커뮤니티 중심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저자들은 한국 스포츠 용품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네 가지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는 브랜딩 인재 양성이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체계적인 브랜딩 역량이 부족하다. 스토리텔링, 디지털 마케팅, 소비자 경험 설계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진정성 있는 기업가 발굴이다. 단기 매출 중심이 아닌, 스포츠 활동에 대한 열정과 진심을 철학으로 내세우는 창업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셋째는 창업 생태계 조성이다. 무신사, N15 디지털대장간과 같은 시스템을 스포츠 산업에도 도입해 샘플 제작, 생산 연결, 마케팅 지원 등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넷째는 정부 정책 개선이다. 참여 중심, 가치 기반의 기업을 평가·선발할 수 있도록 스포츠 용품 산업 지원 정책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저자들은 “국내 스포츠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실천적인 방향을 제시했다”며 “기술력이나 마케팅 비용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와의 진정성 있는 소통과 가치 기반의 브랜딩”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