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뇌과학

2025-04-09

“살민 살아진다.”

근래 인기를 끈 드라마에서 많은 사람을 울린 대사다. 사고로 순식간에 자식을 잃고 절망에 빠진 아직은 어린 부모에게, 나이 든 이들이 한 말이다. 하지만 지금 무거운 슬픔에 짓눌린 부부에게 이 말이 제대로 들릴 리 없다. 어떻게 이 슬픔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그렇게 영혼이 빠진 듯 숨만 쉬던 중 부부의 눈에 문득 무언가가 들어온다. 따듯한 밥상, 먼지 없는 마루, 채워진 쌀독, 남겨진 다른 자식들의 말갛게 씻긴 얼굴 같은. 그건 그들이 그 기간을 살아낼 수 있도록 돌봐준 사람들의 흔적이었다. 그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다르게 공감해준 것뿐이었다.

인간은 공감할 수 있는 존재다. 심지어 뇌과학자들은 인간은 ‘공감하는 뇌’를 타고난 존재라고까지 말한다. 신경학자 에밀리 캐스파도 그렇다고 여겼다. 하지만 르완다 내전의 전범들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가해자들을 인터뷰하며, 그는 끔찍한 모순을 느낀다. 어떻게 공감하는 뇌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같은 인간을 상대로 이토록 잔악한 학살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일까.

그를 더 고뇌하게 한 건, 이 학살자들 대다수가 피와 살육에 굶주린 사이코패스들이 아니라 일반적인 양심과 도덕심을 지닌 보통의 사회인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은 악마가 아니라, 그저 명령에 따른 보통 사람들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해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의 대표적 인물인 아돌프 아이히만을 보면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으로 알려진 것이기도 하다.

캐스파 교수는 신경학자답게 현상 그 자체보다 이 현상을 만들어내는 원인, 특히 우리의 뇌에 주목한다. 그리고 한 번 더 충격을 받는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우리 뇌의 고유한 능력이 특정한 방향으로 증폭될 경우, 인간은 오히려 한없이 무감각하고 잔인해질 수도 있다는 가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인간은 공감하는 뇌를 가지고 태어나기에 자연스럽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 공감의 정도는 상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은 나와 가깝거나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감정을 더 크게 받아들인다. 이는 반대로 나와 별개라고 여겨지는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해서는 감정적 공감도가 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쟁 영화를 볼 때, 아군의 부상은 안타까워도, 적군의 수많은 죽음에는 별다른 동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상대가 나 혹은 우리와 분명히 구분되는 ‘적’으로 인식되는 순간, 감정적 공감은 증오로 폭주해 상대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뿐 아니라 자신이 가해자가 되어도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공감은 꼭 우리를 극단으로 몰아가기만 할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공감은 우리를 다르게 행동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공감을 타인의 감정에 동화되어 그들과 함께 웃어주고 울어주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이러한 감정적 공감(emotional empathy)만이 공감의 모든 것은 아니다. 상대의 기분에 똑같이 동조하지는 못하지만, 상대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공감, 즉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도 있다. 슬퍼하는 이를 끌어안고 그의 감정에 동화되어 함께 울어주는 것도 공감이지만, 감정을 함께 나누지는 않더라도 상대가 지금 슬퍼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그대로 둔 채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공감인 것이다.

감정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을 구분하고, 인지적 공감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은 한 인간이 성숙한 사회인이자 직업인으로 기능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한 의료 드라마에서 멘토 격인 의사는 후배에게 이렇게 말한다. “의사는 공부를 많이 해야 돼. 환자의 아픔에 공감해 함께 울어준다고 환자가 살지는 않거든.”

최근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로 혼란해지고 불확실성이 심화하면서,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저마다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는 상태다. 이런 집단화와 타자화에 타고난 감정적 공감 능력이 더해지면, 누구든 언제든 ‘친절한 가해자’로 변모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인지적 공감 능력이 더욱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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