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포기할 때 "돈 걱정말라"…현대차의 27년 수소 뚝심

2025-08-18

세계 최고기술 수소왕국의 고민

경제+

1969년 닐 암스트롱이 탄 아폴로 11호엔 수소연료전지가 실려 있었다. 지구에서 싣고 간 수소·산소를 우주에서 연료전지에 주입해 전기와 물을 만든 것. 그 전기로 우주선 시스템을 돌리고, 물은 비행사의 식수로 썼다. ‘청정에너지’의 원형이 달에서 이미 구현된 것이다. 현대자동차도 이 수소에너지에 주목했다. 1998년 수소전기차 사업에 뛰어들어 한 우물만 팠고, 수소차 판매 세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경쟁자가 없다. 선점일까, 고립일까. 먼저 길을 낸 걸까, 아니면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 남은 걸까. 수소전기차에 대한 현대차의 집착, 그리고 전 세계 수소차 시장 흐름을 더 컴퍼니에서 짚어본다.

◆머큐리 프로젝트의 꿈=1998년 현대차 연구원 7명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우주선 연료전지 시스템을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납품하던 기업(UTC파워)을 찾아 수소전기차 개발을 시작했다. 2000년 국내 최초 수소전기차 ‘머큐리1’의 개발 스토리다. 한국에서는 2004년 수소전기차의 엔진 격인 ‘스택’ 독자 개발에 성공했다. 당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돈 걱정 말고 젊은 기술자들이 만들고 싶은 차는 다 만들어 보라”며 힘을 보탰다고 한다.

2013년, 세계 최초의 수소전기차 양산 모델 ‘투싼ix 퓨얼셀’이 출시됐다. 후속 모델 ‘넥쏘’는 2018년에야 빛을 봤고, 넥쏘 2세대 ‘디 올 뉴 넥쏘’는 다시 7년이 더 지난 올해 6월 출시됐다. 상용차로 수소트럭 ‘엑시언트’, 수소전기버스 ‘일렉시티’, ‘유니버스’도 양산 중이다. 지난해엔 “2033년까지 수소 관련 연구개발·설비투자·밸류체인 사업화에 총 5조7000억원을 쏟겠다”고도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뿐 아니라 선박 등 모든 운송 수단에 수소연료전지가 활용·확장될 거라고 주장하는데, 정말 그런 날이 올까.

◆수소차 탈출 러시?=현대차의 고집과 달리, 경쟁사들은 속속 백기를 들고 있다. 스텔란티스는 지난달 16일 수소연료전지 기술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파산하거나 새 주인을 찾는 회사도 여럿이다. 전기·수소연료전지 트럭을 공급해온 ‘니콜라’, 르노와 플러그파워의 합작사 ‘하이비아’, 고려아연이 투자한 미국 모빌리티 기업 ‘하이존모터스’가 그 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수소차 판매량은 2023년 대비 21.6% 줄어 총 1만2866대에 그쳤다. 2022년 2만704대를 정점으로 2년 연속 감소 중이다. 지난해 수소차 판매 1위 현대차는 넥쏘와 일렉시티 등 총 3836대를 팔았다. 2위 토요타도 성적이 좋지 않다. 지난해 1917대를 팔아, 전년 대비 50.1%로 반토막 났다. 수소차는 왜 이렇게 안 팔리는 걸까.

①차종이 적다: 2013년부터 10년간 전 세계에 출시된 수소 승용차는 현대차 투싼ix 퓨얼셀(2013년 출시)·넥쏘(2018년), 토요타 미라이(2014년)·크라운 수소차 모델 등 딱 4종이었다. 매년 수십 종의 전기·하이브리드 신차가 쏟아져 나오는데 수소차 존재감은 찾기 어렵다.

②충전소도 없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등록된 수소차는 3만8000대, 수소충전소는 386기가 구축됐다. 지난해까지 누적 71만대가 등록됐고, 충전기 41만기가 깔린 전기차 시장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충전기당 차량 비율로 보면 전기차는 2대, 수소차는 100대. 수소차 이용자들의 충전 불편이 크다는 의미다.

③비싼 수소: 수소차·하이브리드차·전기차로 100㎞ 주행 시 드는 비용을 계산해보면 수소차 연료비(9527원)는 하이브리드차(1만293원)와 비슷하고, 전기차(5769원)보다는 한참 비싸다(8월 9일 기준). 수소 충전 가격도 오름세다. 서울 강동 수소충전소 기준 수소 1㎏ 충전 비용은 2022년 평균 8800원에서 올해 1만1639원까지 올랐다. 석화·정유 공정 부산물을 활용하는 부생수소는 불순물 정제 과정에서,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 그레이 수소는 원료 구매 비용이 든다. 재생에너지에서 뽑는 그린 수소는 경제성이 낮다.

◆‘상용차’로 판 키우는 중국=현대차와 토요타가 수소 승용차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이, 중국은 다른 게임을 했다. 지난해 국가별 수소차 판매 1위는 중국이다. 전 세계 수소차 시장 점유율 55.3%(7113대)로 전년 동기 대비 9.2%포인트 늘었다. 한국의 수소차 판매량이 2023년 4631대에서 2024년 3688대로 20.4% 줄어들 때 중국은 7562대에서 7113대로 400대가량 감소하는 데 그쳤다.

‘수소 상용차’ 시장을 키운 중국 정부 전략이 먹혔다. 2020년 9월 중국 정부는 “연료전지차는 중장거리 및 중대형 상용차 산업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명확히 했다. 중국은 현재 2만4000대가량인 수소차 보급대수를 2035년까지 100만대로 늘리겠다고 한다.

중국 정부의 정책은 전 세계 수소차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엄석기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중국의 수소 상용차 드라이브로 승용차에선 전기차를 밀고 상용차에선 수소차를 미는 식의 전략 구분이 더 명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내수 시장만으로 ‘경쟁’이 가능하단 점도 위협적이다. 현재는 수소연료전지 기술에서 한국이 앞서지만, 중국의 광활한 내륙을 오가는 수소 트럭에서 축적될 방대한 데이터 자원은 한국이나 일본이 따라가기 어렵다.

현대차도 중국의 가파른 성장세를 의식하고 있다. 2023년 중국 광저우에 20만2000㎡(약 6만평) 규모 수소연료전지 생산공장 HTWO광저우를 짓고 6500기 생산 능력을 갖췄다. 수소차 큰 장이 열릴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는 포석이다. 지난달 중국 ‘위안상물류’와 수소연료트럭 최대 1100대를 공급하는 업무협약(MOU)도 맺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국 시장을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공장을 세운 것”이라며 “현지 파트너사와 협력 강화로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수소차 진짜 될까=현대차도 수소차로 당장 수익을 내겠다는 건 아니다.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차를 상용화하고, 가장 앞선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보유했다는 자신감과 기술 우위를 중요시한다. 그래도 중국의 추격을 무시할 수는 없다. 최근 현대차가 상용차 시장을 강화하는 이유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물류 운송을 수소 트럭 ‘엑시언트’로 전환하고, 북미 지역 수소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있다. 스위스 등 유럽에서도 엑시언트 판매를 확대한다. 지난해 9월 기준 스위스 현지 물류업체 27곳에서 엑시언트 48대로 누적 주행거리 1000만㎞를 넘겼다. 수소 공급, 충전소 구축 등 밸류체인을 구성하면 선박·항공 등 다른 운송 수단에도 수소연료전지가 활용될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봐서다.

다만 변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 캘리포니아주의 친환경차 정책에 반대하며 “전기차든 내연기관차든 선택권이 있지만, 아마 수소차는 아닐 거다. 수소는 터지면 끝”이라고 수소차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엄석기 교수는 “현대차와 제너럴모터스(GM)의 협력 계획이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차에 집중된 건 미국 정책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수소차 보급은 더딜 것”이라고 전망했다. 1969년, 달에서 가능했던 기술이 지구에서 더 확산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술보단 규제 환경에 달렸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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