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 🚨 내 곁의 싱크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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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딥페이크로 이런 합성물도 만드나?' 최근 서울 연희동에 생긴 싱크홀 현장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보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도로 한복판 커다란 구덩이에 차 한 대가 푹 처박힌 장면엔 그만큼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그냥 걷다가 혹은 차를 타고 가다가 발밑으로 사라져 다치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니요.

오늘은 언제 꺼질지 몰라 불안하게 하는 그 지하 세계에 관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2020년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인데, 최근 싱크홀 사건에도 유효한 분석과 과제를 제시하고 있어요. 함께 읽고 대화 이어가겠습니다.

복잡해진 땅, 빗물도 벅차다

2020. 9. 6. 하규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환경연구본부장

올해는 유난히 재난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긴 장마와 집중호우로 1000여건의 산사태와 홍수가 우리나라 곳곳을 휩쓸고 지나갔다. 도시지역에서는 빗물 배수 불량으로 인한 하수도 역류현상을 비롯해 싱크홀과 공사장 인근의 지반침하 등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이번 여름철 집중호우에 의해 도시 지역의 침수 피해가 두드러졌는데, 이는 도심지 과밀화로 빗물을 흡수할 수 있는 자연지반이 부족해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도심지 지질환경문제가 빈번해지고 날로 심각성이 더해 가고 있지만, 도시화 추세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은 2014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54%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2050년 이 비율은 66%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도심지 과밀화로 인한 토지자원의 수급 문제와 자원고갈 등을 대비해 도시공간의 효율적인 이용과 개발을 위한 대체공간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구름 위로 솟는 슈퍼 마천루, 에크폴리스(자연생태도시), 스마트시티 등의 다양한 미래형 도시모델도 제시되고 있다. 특히 도시 재정비, 교통량 제어, 가용 용지 확보 등 한정된 지상공간을 대체할 수 있는 지하공간 활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도심지 지하공간에 대한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그에 따른 여러 환경문제의 심각성도 더해가고 있다.

지난 8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에서 발생한 싱크홀 현장. 연합뉴스

도심지 지하공간은 상하수도·가스관 같은 기간시설과 지하철·터널·시설물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형재해로 이어진다. 또한 도시개발과 확장 과정에서 도로와 건축물 등 불투수 면적이 증가하게 된다. 이는 지표 유출량 증가와 지하수 함양량 감소를 가져와, 도시 하천이 건천화되고 수문순환(물이 지표면에서 공기 중으로 증발한 다음 다시 지표면에 비로 내리는 것)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도시의 '레질리언스(Resilience·회복력)'는 점점 작아져 우리가 생각하는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공간으로서의 도시는 꿈꿀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전 세계의 지질 전문가들은 도시 지질재해에 주목하고 과학적 대응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특히 영국·독일·프랑스 등 선진국은 지질조사소를 중심으로 31개국 29개 도시가 관여하는 도심지 지질 연구 네트워크를 2013년부터 구성해 활동해오고 있다. 중국 상하이·싱가포르·인도네시아 자카르타·태국 방콕 등에서도 지하공간 개발과 관련된 지반침하 등에 대해 국제공동 조사 및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3차원(D) 지질모델링, 지반 물리탐사, 지구화학탐사, 물성 분석 및 모니터링 등을 활용한 도시 공간 정보지도 구축이 시급하다. 도심지 지하 환경은 복잡한 지하시설물에 의해 지질학적·지반공학적 정보수집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이러한 간섭을 극복할 수 있는 정밀하고도 신뢰성 높은 자료취득과 해석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지하공간의 개발과 이용은 다양한 환경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첨단 디지털 융합기술을 결합한 도심지 지질환경 변화 예측기술 개발을 통해 미연에 지질재해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도심지 과밀화와 지질환경 문제 극복을 위한 국제적인 공조와 정책적 지원도 병행해서 이뤄져야 한다. 안전하고 쾌적한 도시 환경 회복의 힘은 이 같은 노력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최근 서울에서는 강남과 종로에서 잇따라 싱크홀이 발생했어요. 서울시는 연희동 싱크홀을 두고 "원인 미상"이라며 "지난 5월 탐사했을 때는 공동(땅속 빈 구멍)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듯한 당국의 모습에 사람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진 것 같아요.

싱크홀이 발생하는 원리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하수의 이동이 싱크홀을 만듭니다. 지하수와 흙이 뒤섞인 땅에서 지하수가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면 원래 있던 자리엔 공동이 생기죠. 어느 날 이 공간이 무너지면서 지표면에 싱크홀이 나타납니다. 비가 오거나 가뭄이 들어 전체적인 지하수 분포 상태가 달라지면 지하수가 활발하게 이동할 수 있어요. 공사 때문에 일부러 땅을 파헤치거나 지하수를 마시기 위해 길어 올려도 마찬가지죠. 이유가 참 다양하지만, 땅 밑에 공동이 생겼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위험한 공동을 경계하면 싱크홀 사고를 어느 정도는 예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도시에 변수가 너무 많이 생겼다는 점이에요. 지하에서 상하수도 등 각종 설비와 지하철, 건물의 지하층이 서로 얽히면서 지하수의 흐름은 그만큼 더 복잡해졌습니다. 2014~2015년 9호선 지하철 공사와 롯데타워 등 대형 건축물 공사가 동시에 진행됐던 서울 잠실 일대에서 싱크홀 발생이 부쩍 잦았던 배경이기도 해요. GTX 등 지하에서 계속되는 건설 사업 또한 그 복잡성을 키우고요. 요즘 지도는 건물의 높낮이까지 표현하는데, 지하 세계에 대해서는 무엇이 어떻게 꼬여있는지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전체 생김새를 잘 모른다는 점에서 도시의 지하는 '난개발' 상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도시에 쌓인 세월 또한 변수입니다. 낡은 상하수도관이 파열돼 새어 나온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지하수의 흐름을 한층 더 어지럽게 만듭니다. 폭우로 단시간에 많은 물이 지하로 흘러들어도 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기후변화로 폭우는 더욱 극심해질 가능성이 커요. 이렇게 변수가 쌓이고 쌓인 상황에선 '지난 5월 탐사했을 땐 괜찮았다'는 식의 설명은 무의미합니다. 단 몇 개월, 단 몇 주 만에도 지하 공간엔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언제 나타날지 모를 싱크홀을 걱정하며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까요?

"인프라는 지루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인프라의 특성상 일단 자리를 잡으면 오랜 기간 동안 큰 변화 없이 그 자리를 지키게 되기 때문이다. (…) 이렇듯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프라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이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인 최형섭 박사는 인프라 노후화 문제를 경고하는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발아래 인프라를 항상 깔고 살면서도 관심을 항상 기울이지는 않는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있어요. 여전히 인프라를 '개발'하는 문제와 달리 '관리'하는 일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지난 선거만 봐도 각종 철도·도로를 지하화하겠다는 공약들이 주목받았지만, 그 인프라가 묻힐 지하의 복잡성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싱크홀은 또 언젠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 불확실성만 탓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미 지하 공간의 상세한 지도를 그리는 일이나 노후 상하수도관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등 꼭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데, 이런 과제들은 '우리 동네 새 지하철 개통'만큼 매력적이지 않아서 선거 공약이나 행정 절차에서 뒤로 밀려나기 일쑤니까요. 다시 나타난 싱크홀, 다시 커지는 불안감을 항상 곁에 존재하는 인프라에 관한 관심으로 잇는 일이 필요합니다. 공약과 행정을 이끄는 건 결국 다수의 관심사이니까요.

✦ 1. 도시화와 지하공간 개발은 빗물조차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게 만들어 도시의 지질재해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 2. 최근 서울에서 싱크홀이 잇따라 발생했다. 지하공간 '난개발'로 지하수 흐름 예측이 더 어려워지면서 싱크홀 예방에도 변수가 되고 있다.

✦ 3. 인프라를 '관리'하는 일은 '개발'하는 일보다 덜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곁에 존재하는 인프라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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