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신발, 식음료 등 글로벌 브랜드로 지칭되는 소비재 기업부터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된 글로벌 플랫폼 기업까지 다국적기업은 글로벌경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글로벌 경제의 핵심 주체로서 기술혁신, 고용 창출, 산업발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다국적기업의 경우 ‘글로벌 세 부담 최적화’라는 미명하에 전문가 조력을 받아 치밀하게 사업구조와 전략을 수립하여 조세회피에 이용하고 있다. 이들은 복잡한 지분구조와 사업형태로 인해 정확한 수익 규모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세무조사 자료 요구에도 중요한 자료는 국외 모회사에 소재한다는 이유로 제출을 미루거나, 국외 모회사는 제출 의무가 없다며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등 정당한 과세권 행사에 불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행 세법규정으로도 자료제출 거부 시 500만원에서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으나, 수조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다국적기업들에게 처벌로써의 실효성은 미미하다. 실제 한 유명 다국적 IT 기업의 경우 조사 시작부터 자료제출 요구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비협조적이었다. 조사팀은 즉시 과태료를 부과했으나 업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제한된 자료를 바탕으로 세금을 부과하였다. 이후 업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불복을 제기한 후 조사 시 제출하지 않던 국외자료 중 본인에게 유리한 자료들만 제출하며 소송 대응에 나섰다.
이런 고의적 조사방해 행위로 인해 과세 당국은 정확한 수입 규모와 세금을 파악하기 더욱 어렵게 되고 이는 결국 국가 재정 확보에 부담으로 귀결된다. 나아가 국내 기업은 다국적기업에 비해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게 되는 불공정 경쟁, 즉 기울어진 운동장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국세청은 자료제출 거부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행강제금’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기한 내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제출할 때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른 기관에서도 시행 중인 제도이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자료제출 거부를 통해 회피 가능한 세액이 더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업 매출액에 비례해 부과하는 이행강제금은 과태료에 비해 자료제출 거부 유인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현재 입법 논의 중인 세법개정 안이 통과된다면, 세무조사 시 자료제출 비협조 기업의 자발적 협력을 유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제재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제도의 도입만으로도 더 이상 자료제출 비협조가 세금회피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명확한 신호를 줌으로써 국내외 기업 구분 없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최재봉 국세청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