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돌지만, 축구는 멈췄다

2025-10-19

2025-26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그 어느 때보다 ‘길어진 경기’ 속에서 ‘줄어든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 경기당 평균 시간은 100분 36초로 역대 최장에 이르렀지만, 실제로 공이 인플레이 상태로 움직이는 시간은 전체의 54.7%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디애슬레틱, 가디언 등은 18일 “팬들이 100분의 경기를 지켜보더라도 그 절반 가까운 시간 동안은 실제 축구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긴장감과 긴박함이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적인 축구 분석 업체 옵타 데이터에 따르면,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공이 경기장 안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시간은 지난해(56분 59초)보다 줄어든 55분이다. 이 수치는 지난 10시즌 중 최저다. 골키퍼 킥, 코너, 프리킥, VAR, 부상 치료, 교체, 세리머니 등 ‘멈춤’의 시간이 45분 35초를 차지한다.

세트피스 득점은 경기당 0.7골로, 2010-11시즌 이후 최고치다. 롱스로인이 부활하면서 공격 지역 스로인의 27%가 박스 안으로 직접 투입되고 있다. 골킥 중 절반 이상(51.9%)이 롱볼이다. 헤딩 득점 비율은 전체의 19.8%로 2000-01시즌 이후 최고치다. 패스 수도 경기당 849회로 15년 만의 최저치다. 디애슬레틱은 “프리미어리그가 단순한 2000년대 초반 축구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펩 과르디올라는 2016년 맨체스터시티 감독이 된 뒤, 공을 오래 소유하며 경기를 지배하는 ‘점유율 축구’를 EPL 전반에 퍼뜨렸다. 이 전술은 처음엔 영국 축구의 거친 스타일을 바꾼 혁신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모든 팀이 비슷한 방식으로 플레이하자, 팬들은 경기가 느리고 단조롭다며 이제는 지루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전 맨유 수비수 파트리스 에브라“펩은 선수들을 로봇으로 만들었다”며 “점유율 축구가 EPL 특유의 혼돈과 즉흥성을 앗아갔다”고 말했다. 디애슬레틱은 지금의 상황을 “2000년대식 축구의 회귀”라며 “세트피스가 늘고, 점유율이 떨어지며, 득점이 줄어들었다. 전술은 전략적이고, 경기는 느려졌으며, 창의성은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브렌트퍼드나 아스널처럼 세트피스 전담 코치를 두고 치밀하게 준비한 팀들은 그만큼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세트피스 중심의 전술이 경기 흐름을 끊고, 팬들의 체감 몰입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EPL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현재 2.6골, 지난 2014-15시즌 이후 최저다. 특히 오픈플레이 득점은 경기당 1.69골로, 2008-09시즌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세트피스가 많아지면 골도 많아질 것이라는 일반적 통념과는 정반대다. 경기의 절반 가까이가 멈춰 있고, 남은 절반은 공중볼과 위치 싸움으로 채워지다 보니 자연스레 공격 전개와 창의적 장면이 줄어든 것이다. 한때 EPL을 상징한 하이 템포, 하이 프레스, 하이 스코어 축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세트피스 전담 코치, 롱스로인 전문가, 느린 빌드업 등은 더 치밀한 전술의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축구 본연의 ‘흐름’과 ‘즉흥성’은 줄어들고 있다. 전 리버풀 스로인 코치 토마스 그로네마르크는 “모든 팀이 롱스로인을 10개씩 던지면, 축구 자체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흥행의 본질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에 있다”고 경고했다.

가디언은 “결국 지금 프리미어리그는 팬들에게 ‘이게 당신이 원하는 축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며 “경기는 길어졌지만, 축구는 짧아졌다. 프리미어리그는 지금 화려한 세트피스 시대 속에서 점점 ‘멈춰 있는 축구’로 변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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