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군을 찾습니다

2025-02-13

2002년의 가을, 서울 인사동. 한국 유학 생활을 즐기던 청년 하라 도모히로(原智弘)의 발길이 한 유명 고서점에 닿았다. 전부 5000원! ‘폐점 세일’이라니. 평소 손에 넣기 힘든 고서적을 발견할 수도 있단 생각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책장을 훑던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금박으로 새겨진 글씨였다. ‘쇼와5년 당용일기’. 서둘러 일기장을 펼쳐본 그의 눈엔 정갈한 필체의 한글과 한자로 섞어 쓴 한 문장이 들어왔다. ‘서력 1930년, 쇼와 5년은 오늘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0년, 당시 14살이던 Y군의 일기는 그렇게 청년의 손에 들려 일본으로 건너왔고 『1930년 조선인 생도의 일기』(데이쿄대출판사)란 이름으로 최근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일기 속 Y군은 누굴까. 한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것보다 흥미진진한 Y군의 일기엔 수많은 단서가 담겨있다. 1915년 9월 8일 서울 정동에서 태어나, 낙원동·익선동 등지에서 살았다. 경기고의 전신인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다녔는데 그의 삶은 요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구와 ‘결투’도 했지만, 시험 기간에 친구에게 참고서를 빌려줬다 발을 동동 구르는 영락없는 10대였다. 재밌는 건 ‘봉선화’와 ‘고향의 봄’을 작곡한 홍난파가 그의 외삼촌이란 사실이다. ‘난파 트리오’를 결성한 홍성유(바이올린 연주가)는 그의 외사촌으로 일기에도 등장한다. 일기엔 설을 쇠고, 장장 편도 두시간 넘게 걸어간 봉은사 소풍 이야기 등도 나오는데 소소하지만 당시를 살던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조선 근대사 전문인 하라 데이쿄대 외국어학부 교수는 왜 이 일기를 책으로 엮었을까. 지난 7일 만난 그의 말이다. “Y군의 일기 자체가 근현대사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그의 이야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가령 Y군은 학교생활에 대한 일기를 꼼꼼히 쓰면서도 ‘국어’ 과목은 일문(日文)이나 일어(日語)로 표기했다. ‘나라말’이라 여기지 않았다는 얘기다. 어른이 된 Y군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라 교수 조사에 따르면 Y군은 경성제국대를 졸업한 뒤 광복 후 굵직한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가 된다. 이후 변호사가 된 그의 흔적은 한국전쟁으로 서울이 함락된 6월 28일 밤 10시, 인민군에 잡혀간 것을 마지막으로 종적을 찾을 수 없게 된다.

하라 교수가 책장에서 Y군 일기를 꺼내 보인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뗐다. “만약 Y군이 살아있다면 100살이 넘었겠지요. 본인을 만나게 된다면 기뻐서 울지도 모르겠어요. 꼭 일기를 돌려주고 싶어요.” 일기를 돌려줄 Y군의 후손을 꼭 찾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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