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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우리 조상들 국적이 일본이었다는 주장이 뜬금없이 나오고 있다. 그런 주장의 속내가 고약하기는 하지만, 근거가 아주 없는 주장은 아니다. 한국이 실효성 있는 국가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반도 거주자들은 일본국 국가체제에 묶여 지낸 것이 사실이다.
일본인 된 것을 좋아하고 그 노릇을 열심히 한 사람들은 친일파다. 반대로 항일운동에 발 벗고 나선 사람도 많지 않았다. 보통사람들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그런데 일본 통치에 잘못이 많아서 보통사람들을 괴롭혔고, 그 잘못의 큰 이유가 이민족 지배라는 데 있었다. 그래서 보통사람들도 해방을 기뻐한 것이다.
이 논란 같지 않은 논란을 보며 인간의 정체성 규정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역할을 생각한다. 국가의 역할은 근대적 민족국가에서 극대화되었다. 교통-통신이 작던 근대 이전에는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생각할 일이 별로 없었고, 교통-통신이 크게 늘어난 지금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국경이 낮아지고 있다.
인간과 국가의 관계는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뀌어 왔고, 역사적 상황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그런데 근대역사학은 연구 조건을 국가가 결정하는 측면이 커서 국가라는 존재를 상대화-객체화하기 힘들었다. 냉전 종식 후 국가의 힘이 약해진 변화를 ‘세계화’라 부르는데, 역사의 탐구에서도 국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국가의 역할이 특별히 작았던 지역
동남아 역사를 살펴보며 국가의 역할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제임스 스코트의 〈통치받지 않는 재간〉(2009)을 읽으며 시작한 생각이다. 국가조직의 강화가 사회 발전에 따른 필연적 현상이라는 통념을 깨트려준 책이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국가의 통제력을 가로막거나 벗어나려는 노력도 인간사회의 한 중요한 측면임을 설명해 준다.
역사의 흐름을 넓게 훑어보면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부족국가에서 국민국가에 이르는 과정을 하나의 ‘역사의 법칙’처럼 보는 추세도 있었다. 그러나 이 추세는 국가의 역할이 극대화되어 있던 근대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다. 인간사회에 국가를 강화하는 경향만이 아니라 국가를 거부하는 경향도 존재함을 스코트는 밝혔다.
국가를 거부하는 경향이라면 무정부주의가 얼른 떠오른다. 무정부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위협하는 일체의 위계질서를 배격하는 사상-운동인데 근-현대세계에서는 국가와 자본주의가 대표적인 위계질서이기 때문에 배격의 초점이 되는 것이다. 스코트는 (적어도 이 책에서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 국가의 성립 근거를 살펴보는 연구자일 뿐이다.
국가를 강화하는 경향과 거부하는 경향은 어느 사회에서나 엇갈려 나타나는데 어느 쪽이 우세할지는 지리적 조건과 시대적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 동남아는 거부 쪽이 우세하게 나타날 지리적 조건을 가진 곳이다. 스코트는 국가의 광역 통제가 힘든 대륙부 산악지대를 살펴봤는데, 육지와 바다가 복잡하게 뒤얽힌 해양부도 비슷한 조건이다. 국가의 통제가 싫으면 그를 벗어나 자리 잡을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15세기 이전의 동남아 역사에도 많은 국가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국가들의 실제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국가’ 관념과 차이가 큰 것이었다. 그 성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념을 벗어나려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눈에 보여야만 힘을 쓰는 절대권력
9세기 자바의 보로부두르 사원이나 12세기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같은 웅대한 유적을 보면 거대한 국가의 존재를 떠올리게 된다. 방대한 인력 동원에 필요했을 조직력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상상해 온 광역 국가조직의 흔적이 지금까지 고고학 연구로 확인되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의 형태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1961-2020)의 유작 〈모든 것의 시작〉(2021, 데이비드 웽그로와 공저)에 국가의 시작을 다룬 챕터(제10장)가 있다. 그중 “국가 없는 군주”란 섹션에서 새로운 상상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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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神政)국가’와 ‘율령(律令)국가’의 차이를 해석한 내용이다. 신정국가의 제사장-군주는 초월적 존재다. 그 권위는 상식을 뛰어넘는 행위로 뒷받침된다. 극심한 고통을 남에게 끼치거나 스스로 받아들이는 방식이 많다. 피지배자들은 자신과 다른 지배자의 특성에 경외감을 느낀다. 율령국가는 이와 달리 합리적 기준을 내세운다.
신정국가의 권위 전파에는 공간적-시간적 제약이 있다. 지배자를 대면하는 사람들은 그 권위에 굴복하지만 그 권위를 신하나 관료가 대신 전파할 수 없다. 지배자의 권위가 후계자에게 계승되는 과정도 순탄치 않다. 권위의 성격이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신정 권위의 비확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그레이버는 실룩(Shilluk)의 설화 하나를 소개한다. 실룩은 수단 남부에 15세기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존재한 신정국가였다.
“잔인한 왕이 있었다. 많은 백성을 죽이고 심지어 여자들까지 죽였다. 백성들은 모두 무서워했다. 어느 날 왕은 백성들이 얼마나 자기를 무서워하고 자기 말을 잘 듣는지 확인하려고 추장들에게 궁전에 벽을 쌓아 자기를 여자아이 하나와 함께 가두라고 명령했다. 한참이 지난 후 벽을 허물라고 명령했다. 추장들은 그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왕은 죽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명령을 따를 마음이 들지 않은 모양이다.
민족만이 아니라 지역도 ‘상상의 공동체’
동남아 역사를 국가 기준으로 살피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를 제프리 건은 〈상상의 지리학〉(2021)에서 지적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상상의 공동체”와 같은 문제를 ‘지역’의 관념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뜻에서 붙인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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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를 넘어서는 관점을 모색하는 길이 ‘지역사’다. 그런데 지역사의 고찰 대상인 ‘지역’은 어떻게 설정되는 것인지 건은 따져 묻는다. 이 설정이 바라보는 사람의 ‘상상’에 의해 이뤄지고, 그 상상은 문화적 조건에 따라 펼쳐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동남아 지역에 대한 상상으로 인도문명권의 관점, 아랍문명권의 관점과 중국문명권의 관점을 예시한다. 동남아 초기 역사에 관한 기록을 이 3개 문명권에서 찾을 수 있고, 현지 기록도 3개 문명권의 문자(산스크리트, 아랍문자, 한자)로 남아있다. 각 문명권의 기록은 그 문명권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그 문자로 작성된 현지 기록도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건은 가정한다.
16세기 이후 동남아에 들어온 유럽인들은 세 개 갈래의 기록 중 어느 한 가지에 치중하는 경향을 가졌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 측면에만 시야가 제한되는 것이다. 세 측면을 골고루 살펴보는 연구방법은 최근에 와서야 가능하게 되었다. 〈상상의 지리학〉은 이 새로운 연구방법의 지금 상황을 정리한 책이다.
중요한 자료들이 웬만큼 정리되어 있어서 사용된 모든 문자에 정통하지 않은 연구자들도 검토할 수 있게 된 덕분에 가능하게 된 연구방법이다. 자료 정리가 계속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자료의 유통이 활발해지고 있으므로 이와 같은 연구방법이 앞으로 더 널리 활용될 것을 기대한다.
팔림세스트에 나타나는 문화적 포용성
〈상상의 지리학〉을 읽으면서 ‘팔림세스트(palimpsest)’란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팔림세스트란 재활용 양피지 문서의 바닥에서 찾아내는 기록이다. 양피지는 값이 비싸서 필요 없게 된 문서의 내용을 지우고 그 위에 새 문서를 작성한다. 이런 문서의 화학처리를 통해 바닥에 깔려있던 문서 내용을 되살려낼 수 있다. 당시에는 필요 없다고 지워버린 문서에서 후세 연구자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내용을 찾아내는 일이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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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중국, 아랍 등 여러 문명권의 언어, 문자, 종교 등 문화적 요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동남아 지역을 휩쓸었다. 특정 문명권의 시각에서 보면 이 지역이 그 문명권에 편입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유럽의 초기 동남아 연구자들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특정 문명권의 시각에 쏠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차츰 여러 문명권의 영향이 엇갈리는 하나의 교차로를 떠올리게 되었다.
여러 문명권의 영향을 나란히 살피면 그 사이의 팔림세스트-덧쓰기 현상이 눈에 들어온다. 인도문명의 영향이 깔려있는 지역에 중국문명이나 아랍문명이 들어와 온갖 형태의 복합적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외래문명 전래 이전의 정령 숭배(애니미즘)도 밑바닥에서 확인된다. 유럽인이 가져온 기독교에서도 팔림세스트 현상이 나타난다.
17세기경까지 동남아에서는 복합적 문화구조가 일반적 현상이었다. 불교국가든 이슬람국가든 교역에 종사하는 주류집단의 필요에 따라 외래종교를 선택하더라도 사회 전체가 그 선택에 따라 근본적 변화를 겪기보다는 재래문화와 어울리는 방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18세기 이후 산업구조가 외부조건에 따라 재편되면서 종교 등 문화 현상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가장 큰 이슬람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종교의 성격과 역할에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이 까닭이다. 18세기 이후 자바섬에 비해 말레이반도의 산업구조 변화와 인구 증가율이 훨씬 더 컸다. 말레이시아에 비해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이 세계적 이슬람운동과 거리를 두고 고유한 특성을 지켜 온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