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근아, 지게차 면허증 있으면 월 900만원을 번다더라. 포클레인 면허증도 꽤 큰돈이 된다고 그러네. 나 그런 거 하려고.
1965년생인 내 동기들은 올해 60세가 되면서 다들 회사에서 정년퇴직했다. 일찌감치 회사를 떠나 11년째 사회에서 칼바람을 맞아본 내겐 이제 막 퇴직한 친구들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의미의 신조어) 넘치는 “지게차” 타령이 당황스러울 뿐이다. 그냥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을 보낸다.
나는 1992년 소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한국전기통신공사(KT의 전신)에 입사해 2014년 명예퇴직했다. 같은 직장에 다니던 아내에게도 “내가 먹여 살리겠다”며 동반 퇴직을 권해 함께 나왔다.
회사에서 퇴직을 권했던 상황은 결코 아니다. 당시 난 KT의 영업직 사원 8000명 중 단 40명뿐인 마이스터였다. 마이스터는 KT 내 장기 근속자 중 고과 상위자, 관련 자격증 보유자, 전문교육 이수자, 상사 추천 등 까다로운 여러 요건을 충족한 이들만을 선발해 우대해 주는 제도다. 특히 난 마이스터 중 유일하게 팀장 보직을 겸하고 있었다.
전적으로 내 선택에 따라 회사를 나왔지만, 퇴직 후 소위 ‘지옥’을 맛봤다. 날 스카우트한 회사가 사기를 당해 공중분해 되면서 나는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10개씩 하느라 녹초가 됐다. 지금의 직장에 오기까지 무려 7번의 이직을 경험했다.

대기업에서 펜대 굴리는 관리자였던 나는 어느덧 전신주를 능숙하게 타는 현장 기술자로 변신했다. 이제 어딜 가나 회사명 대신 ‘오창근’이란 내 이름 석 자로 일을 지속하고 벌이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몸으로 먹고사는 기술직으로 변신에 성공했단 사실은 내겐 엄청난 자부심이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나이 70, 80세가 돼도 일할 수 있으니 내겐 더 이상 은퇴는 없다. ‘신의 직장’에서 지옥으로 추락했다 기름밥 먹는 안식처를 찾기까지 지난했던 11년 여정이 궁금하신가. 내 경험담이 누군가의 ‘은퇴 후’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심정에서 그 얘기를 털어놓으려 한다.
은퇴Who 28화 〈목차〉
📌 ‘신의 직장’을 박차고 나온 까닭
📌 주말도 없는 ‘극한 알바’로 번아웃
📌 현장 기술자로 변신…가장 큰 자부심
📌[은퇴 후 조언] 퇴직 전에 잡코리아에 이력서 내보세요.
※ 〈은퇴Who〉 다른 이야기를 보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㉗ 52세에 명퇴당한 MBC PD, 월 1000만원 찍은 ‘사소한 습관’
㉖ 진급 막혀 전역한 천생 군인, ‘연봉 9000’ 기술직 된 기적
㉕ “그 호텔 가면 삼시세끼 준다” 월 9000만원 버는 시골 사장님
㉔ “남편이랑 놀았을 뿐인데…” 정년퇴직 부부 월 300 버는 법
㉓ 1000만원 들고 귀촌한 초짜, 연 1억 버는 ‘달달한 비밀’
‘신의 직장’을 박차고 나온 까닭
오십도 안 된 나이에, 처자식 있는 가장이 회사를 그만뒀다면 이유가 한두 가지만 있는 건 아닐 거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