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6일 ‘대왕고래’로 명명된 동해 심해 가스전 유망 구조를 시추한 결과,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한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동해 7개의 유망구조 중 하나인 대왕고래에 대한 첫 시추 결과가 나온 것일 뿐, 남은 6개 유망 구조에 대한 추가 탐사는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탐사 시추에는 항상 실패 가능성이 있다(대통령실 관계자)”는 원론적 입장만을 전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도 윤 대통령 측으로부터 야당의 대왕고래 예산 삭감 관련 질문을 받자 “중국이나 일본은 근해에서 해저자원 개발을 많이 하고 있다”며 “두 나라를 따라가려면 바다에서 많이 시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참모들 사이에선 실망하는 기색도 감지됐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중 대량의 석유와 가스가 동해에서 발견된다면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이 직접 국정브리핑에 나서 대왕고래의 존재를 처음 알렸을 때만 해도 이날 산자부의 실망스러운 발표를 예상하긴 쉽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당시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직전 예고도 없이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내려와 생중계 방송을 통해 “국민 여러분, 포항 연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기능이 나왔다”며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동해에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유수의 연구 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구체적 수치도 거론했다.
윤 대통령 브리핑 직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던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현재 가치로 따져보면 최대 매장량은 삼성전자 시총에 5배에 달한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발표 직후 정부 고위관계자는 “먼저 대왕고래 보고를 받았는데 가슴이 떨렸었다”며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더니, 동공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었다.
통상 석유 시추 사업과 같이 실패 가능성이 높은 정부 사업을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는 건 드문 일이다. 하지만 당시 윤 대통령은 4·10 총선 패배 이후 반전의 카드가 절실했던 상황이었고, 대왕고래가 지지율 상승의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란 참모들의 조언에 직접 발표를 결심하고 극비리에 브리핑을 준비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초기엔 산업부 등 늘공(직업 공무원) 사이에선 신중론도 제기됐다”고 했다.
6일 산업부 고위관계자가 브리핑에서 “(지난해) 발표는 저희가 생각하지 못했던 정무적인 영향이 많이 개입되는 과정에서 장관님의 (삼성 시총) 비유가 많이 부각됐다”며 “첫 시추서 성공 확률은 로또보다 작을 텐데 많은 부담을 안고 있었다”고 밝힌 것도 발표 당시 정부 내의 견해 차이를 언급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산업부는 이후 ‘정무적 고려’ 발언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삼성 시총 발언이 정무적으로 활용되면서 논란이 된 것에 유감을 표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의 직접 발표 뒤 야당의 공격이 쏟아지며 대왕고래 프로젝트 자체가 정치화되자, 당시 대통령실 내에서도 “윤 대통령의 직접 발표가 실책이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전직 대통령실 관계자는 “액트지오 논란 등 부정적 사안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고 했다. 대왕고래 발표 다음달인 7월 체코 원전 수주를 윤 대통령이 아닌 성태윤 정책실장이 한 것도 이같은 여파를 고려한 조치였다.
더불어민주당은 강하게 성토했다. 박경미 민주당 대변인은 6일 논평에서 “허술한 검증, 과대 포장된 전망, 정치적 이벤트로 변질된 석유 개발 사업의 참담한 현실은 온전히 윤석열의 오만과 독선이 부른 결말”이라며 “정부와 국민의힘은 추가 시추라는 헛된 꿈으로 또다시 국민을 농락하지 말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