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30·LG)는 지난해 LG에서 석 달을 뛰는 동안 아주 상반된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여름 케이시 켈리가 떠난 뒤 LG에 입단해 8월부터 마운드에 오른 에르난데스는 정규시즌에서 총 11경기에 나갔다. 선발로는 9경기에서 44이닝을 던져 3승2패 평균자책 4.30을 기록했다.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는 2차례에 그쳤다. 두 달이었지만 선발로서 압도적이지는 않았고 꾸준한 안정감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그대로라면 재계약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펜 투수 에르난데스는 달랐다. 8월과 9월 한 번씩 중간계투로 나가서는 각 1이닝 1안타 무실점, 2이닝 무안타 무실점을 던져 홀드와 세이브를 기록했다. 까다로운 KT와 두산을 상대로 에르난데스를 중간계투로 기용해 성공한 LG는 포스트시즌에서는 아예 불펜으로 전환시켰다.
불펜이 너무 부실해 쓴 극약처방은 LG 가을야구 최고의 한 수가 됐다. 에르난데스는 KT와 준플레이오프에서 5경기 전부 등판해 2세이브 1홀드로 대활약했다. 삼성과 플레이오프에서는 3차전에 나가 3.2이닝 2피안타 무실점의 역투를 펼쳐 LG를 승리로 이끌고 세이브를 거뒀다.
이 활약과 투혼으로 점수를 듬뿍 받은 에르난데스는 재계약에 성공, 올해도 LG에서 뛴다. 그리고 다시 선발이다. 이제 선발로 잘 던져야 한다.
LG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닝이터다. 외국인 투수들이 그 중심에 돼줘야 한다는 점에서 선발 에르난데스는 불안요소를 갖고 있지만, LG는 지난 포스트시즌을 통해 기대요소가 생겼다고 보고 있다.
염경엽 LG 감독은 “선발로 던질 때는 직구, 커터, 슬라이더 위주로 경기했지만 포스트시즌에 들어가면서는 커브를 많이 썼다. 중간에서 3이닝을 던지게 되면서 커브 효과가 굉장했다는 것을 보여줬고 본인도 느꼈기 때문에 선발로서도 그런 패턴으로 하면 이닝이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르난데스는 시속 150㎞대 빠른 공을 던지면서 투심패스트볼과 커터, 체인지업, 커브 등 다양한 구종을 던진다. 그 중 잘 던지지 않았던 커브를 가을야구에서 더하면서 위력적인 구위가 있는 데다 타이밍 싸움까지 완벽하게 이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선발로 돌아가는 올해도 불펜투수였던 포스트시즌과 같은 패턴을 활용하면 보다 오래, 잘 던질 수 있다고 기대한다.
염경엽 감독은 “포스트시즌 때 불펜이지만 1이닝을 던진 게 아니었다. 그렇게만 던지면 3이닝을 던졌을 때도 어쨌든 상대 타순 한 바퀴 정도는 확실하게 막는다. 그렇게 가져가면 선발로서도 충분히 긴 이닝을 던지면서 투구 수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고 기대했다.
13승(6패)을 거둔 디트릭 엔스를 떠나보낸 LG는 에르난데스와는 재계약 했다. 엔스의 자리에는 요니 치리노스(32)를 새로 영입했다. 메이저리거 출신 우완 강속구 투수 치리노스가 새 에이스가 되어주기를 기대하지만, 리그에 처음 오는 새 투수라는 불확실성을 안고 시작해야 한다.
해마다 우승에 도전하는 LG는 늘 외인 듀오 30승을 기대하며 시즌을 출발한다. 최소한 외국인 투수 둘이 나란히 두자릿승수는 거둬줘야 LG의 마운드 운용이 수월해진다. 스토브리그에 큰 투자를 하고 불펜을 싹 물갈이 했지만 보직을 전부 바꿔야 하는 터라 불펜 역시 변수는 안고 있다. 선발진의 몫은 올해도 커야 하고 그 중 외국인 듀오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난 가을의 영웅이었던 에르난데스가 이제 선발로 돌아가 그 방향키를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