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 중인 A씨는 최근 카페 확장을 위해 대출 상담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은행을 가려면,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야 해 부담스럽다. 그나마 있던 영업점도 은행들이 줄이는 추세라 섬에서는 더는 대면으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없어서다. 집 근처 우체국에서는 간단한 송금은 가능하지만, 대출 상담까진 불가능하다. 인터넷 은행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A씨에게는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한 비대면 대출 상품 가입은 하늘의 별 따기다.

A씨처럼 은행 영업점 감소로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예·적금이나 대출 상담 같은 간단한 업무를 은행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27일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은행대리업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행 은행법상 은행의 고유업무(예·적금, 대출, 이체 등 환거래)는 은행이 아닌 제3자가 대신 할 수 없다. 하지만 은행대리업 제도를 도입하면, 다른 은행의 지점이나 은행이 아닌 곳에서도 은행 고유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우체국에서 KB국민은행 예금에 가입하거나, 신한은행 점포에서 하나은행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금융위는 대출 심사나 승인 업무는 다른 지점에서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위탁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은행 업무를 위탁받은 곳은 대출 상담이나 상품 가입 신청까지만 받고, 실제 대출 심사나 승인은 해당 대출 상품을 만든 금융사에서 수행하게 나눈 것이다.
은행대리업을 수행하는 곳은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금융위는 “기본적으로 은행 또는 은행이 최대주주인 법인, 지역별 영업망을 보유한 우체국·상호금융·저축은행을 인가해 줄 예정”이라고 했다. 특히 전국 2500개 지점을 가진 우체국에 은행대리업을 허용하면, 소비자 불편이 크게 개선할 것으로 금융위는 보고 있다. 이미 우체국은 11개 은행에 대한 입·출금 조회 및 송금 업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를 도입하면, 대출 상담이나 신청까지 가능해진다. 다만, 비대면 영업만 하는 인터넷전문은행 상품들은 은행대리업에 포함하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은행대리업 도입으로 ‘오프라인 금융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한다. 특정 금융사의 영업점이나우체국에서 다른 금융사의 상품을 한 번에 비교해 보고 가입까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많이 쓰는 대출 비교 플랫폼이나 송금 관련 애플리케이션이 오프라인 영업점에 도입되는 셈이라, 비대면 은행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은행대리업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 정부는 올해 안에 은행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법률 개정은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선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해 빠르면 올해 7월부터 시범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편, 금융위는 은행권 공동 현금자동입출기(ATM)를 활성화해 현금 입·출금 불편함을 줄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은행 공동 ATM 운영경비를 사회공헌 활동 비용으로 인정하는 ‘인센티브’도 제공할 예정이다. 또 현재 전통시장으로 한정된 은행 공동 ATM 설치 장소도 관공서나 지역 대형마트로 확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