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블스’라는 반려묘 발톱에 영원히 사라진 ‘라이얼굴뚝새’

2024-07-02

신비로운 우아함과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은 포유류가 있다. 소리 없는 권위로 집 안을 지배하며 온갖 아양과 거만으로 디지털 세상에서 또한 사랑받는다. 고양이다. 영장류가 3300만년 전 등장했는데, 고양잇과 동물은 2500만년 전에야 등장했으니 비교적 신참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양잇과 동물은 크게 표범아과(亞科)와 고양이아과로 나뉜다. 호랑이, 사자, 재규어, 표범, 눈표범 같은 무서운 고양잇과 동물들은 모두 표범아과 소속이다. 스라소니, 치타, 살쾡이,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고양이라고 부르는 집고양이는 고양이아과 소속이다.

고양잇과 동물들이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신생대 마이오세(2400만~520만년 전)에 지구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지구가 점차 시원해지고 건조해졌다. 숲은 줄어들고 대신 초원이 늘었다. 풀을 먹는 초식동물들에게는 낙원과도 같았다. 초원은 먹이가 풍족하거니와 포식자가 몸을 숨기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초식동물들은 살을 찌우며 종과 수를 늘려나갔다.

반대로 육식동물인 고양잇과 동물들은 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눈앞에는 먹이가 널려 있는데 확 트인 초원 환경에서는 사냥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창과 방패의 군비경쟁이 시작되었다. 고양잇과 동물 중 일부에게 특별한 재능이 생겨났다. 민첩성과 은신 능력이 바로 그것. 이 능력을 획득한 고양잇과 동물들만 살아남아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사냥꾼이 되었다.

집고양이의 탄생

뛰어난 사냥꾼인 고양잇과 동물 가운데 펠리스 리비카(Felis lybica)는 자연스러운 위장술, 야행성 습관, 고독한 사냥 습성을 갖추고 건조한 초원과 초목이 우거진 숲 모두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펠리스 리비카에서 진화한 펠리스 카투스(Felis catus)는 선조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펠리스 카투스가 초원과 숲에서 잘 살고 있을 때 지구 환경이 다시 요동쳤다. 2만년 전에서 1만년 전까지 단 1만년 사이에 지구 평균기온이 4~5도나 높아져 15도에 다다랐다. 마침내 지구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며 호모 사피엔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농사를 발명했으며 정착생활을 했고 신석기 문명을 만들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수렵 채취와 달리 농사는 필연적으로 잉여를 낳았다. 잉여 농산물은 마법처럼 쥐를 끌어당겼다. 쥐가 인류와 함께 살게 되었다. 들끓는 쥐는 인류에게는 골칫거리였지만 펠리스 카투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뉴질랜드 남쪽 먼 바다 스티븐슨섬

1894년 등대지기로 부임한 라이얼은

데려온 고양이에게 새를 선물로 줘

결국 10여 쌍 남아 있던 굴뚝새 전멸

한 종 한 개체에 의한 멸종 사건 낳아

집고양이의 조상인 ‘펠리스 카투스’

날렵함·은신술로 한때 강력한 사냥꾼

쥐잡기 필요에 인간이 집안으로 들여

33종 멸종시켰지만 인간과는 잘 지내

그래도 집 밖 나가면 킬러 본능 표출

미국선 1마리가 일주일에 2마리 죽여

야생 고양이 생태 위협은 여전히 문제

펠리스 카투스와 호모 사피엔스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펠리스 카투스는 호모 사피엔스들이 곡식으로 쥐를 유인해주니 고맙고, 호모 사피엔스는 펠리스 카투스가 쥐를 잡아먹음으로써 식량을 지킬 수 있으니 고마웠다.

그렇다고 해서 공생관계는 아니었다. 비록 같은 공간에 서식한다고 하지만 단독 사냥을 하는 펠리스 카투스에게 집단 생활을 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날 호모 사피엔스에게 마음을 조금 허락해준 펠리스 카투스가 생겨났다.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관대하고 덜 공격적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그런 펠리스 카투스를 우대했다. 더 가까이, 심지어 집 안과 창고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도록 허락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모 사피엔스와 더 잘 어울리는 펠리스 카투스 개체군이 형성되었다. 호모 사피엔스와 펠리스 카투스의 공생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집고양이가 탄생한 것이다.

집에 살든, 길거리에 버려졌든, 그 어디에서 만나든, 어떤 모습, 어떤 크기,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고양이라고 부르는 모든 고양이는 집고양이이며 학명은 여전히 펠리스 카투스다.

한 종, 한 개체에 의한 멸종 사건

현대의 펠리스 카투스, 즉 집고양이는 이제 사냥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심지어 사냥할 쥐가 널려 있지도 않다. 그저 자신을 모시고 사는 호모 사피엔스가 챙겨주는 사료를 먹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냥꾼 본능을 숨길 수는 없다. 가끔 쥐는 물론이고 새와 뱀까지 잡아서 자신에게 봉사하는 집사에게 선물로 준다. 그런데 야생동물이 자기 앞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까? 사냥 본능을 발휘한다.

18세기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은 뉴질랜드 남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2.6㎢의 작은 섬에 당시 영국 해군 차관의 이름을 따서 스티븐슨섬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등대를 세웠다. 1894년 데이비드 라이얼이라는 사내가 등대 근무를 위해 섬으로 왔다. 이때 자신의 반려묘 티블스(Tibbles)도 함께 왔다.

티블스는 섬에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나자 라이얼에게 처음 보는 작은 새를 선물로 주었다. 새 사체는 상태가 좋았다. 티블스는 새를 먹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라이얼의 보고를 받은 조류학자들은 이 새가 굴뚝새의 일종으로 처음 보고되는 종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새는 라이얼굴뚝새(Traversia lyalli)로 불리게 되었다. 라이얼굴뚝새는 특이한 새다. 참새목 새 가운데 날지 못하는 새는 딱 다섯 종이 알려져 있는데 모두 포식자가 없는 고립된 섬에 살았다. 짧고 둥근 날개가 달린 스티븐슨섬의 라이얼굴뚝새도 그 가운데 하나다.

더 놀라운 일은 라이얼굴뚝새는 유럽인이 처음 발견한 그해에 멸종했다는 것이다. 라이얼굴뚝새가 스티븐슨섬에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뉴질랜드 전역에서 화석이 발견된다. 마오리족과 함께 들어온 폴리네시아쥐에 의해 몰살되었고 스티븐슨섬에 최후의 10여쌍이 남아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단 한 종, 단 한 개체에 의해 멸종의 길을 걷고 말았다. 티블스가 그 주인공. 티블스가 사냥한 라이얼굴뚝새 박제는 지금도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집고양이에 의한 야생동물의 멸종은 단지 19세기의 사건만은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땅이 넓은 오스트레일리아 과학자들은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실험을 했다. 고양이 밀도가 5㎢당 한 마리꼴로 매우 낮은 국립공원을 두 구역으로 나누었다. 한 곳은 고양이가 들어오지 못하게 울타리를 쳤다. 그리고 2년간 관찰한 결과 울타리가 쳐진 곳은 야생고양이가 있는 지역에 비해 파충류 개체 수가 2배가량 빠르게 증가했다. 고양이가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뜻이다. (고양이 탓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당연한 이야기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유럽인이 정착한 때는 1788년이다. 불과 200여년 만에 오스트레일리아 고유종 포유류 11%가 멸종했다. 물론 사람이 멸종시킨 게 아니다. 사람과 함께 들어온 고양이와 붉은여우 짓이었다.

귀여운 킬러

미국인은 세 가구당 한 마리꼴로 약 8600만마리의 고양이를 키운다. 집고양이 가운데 3분의 2에서 4분의 3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순전한 집고양이다. 이들은 치명적인 본능에도 불구하고 집쥐를 잡을 기회조차 없다. 문제는 나머지 외출하는 집고양이다. 미국 조류보호협회에 따르면 대부분의 외출 고양이는 티블스처럼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평균 두 마리 정도의 동물을 죽이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스미스소니언 철새 센터 책임자 피트 마라는 간단한 처방을 내린다. 고양이를 집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문제는 길고양이다. 야생에서 태어나거나 버려진 길고양이는 야생동물과 같은 치명적인 본능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에는 거의 집고양이 수만큼의 길고양이가 있다. 전통적인 길고양이 문제 해결법은 포획-중성화-방사(Trap-Neuter-Release, TNR) 정책이다. 하지만 TNR 정책을 10년 넘게 펼쳤지만 효과가 없었다. 개체 수 저감 효과는 단기간에 그쳤고 곧 회복되었다. TNR 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길고양이 75% 이상이 불임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북미 지역의 참새 중에는 고양이새(catbird)로 불리는 종(Dumetella Carolinensis)이 있다. 고양이 울음소리와 비슷한 경고 울음소리를 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철새의 이동을 추적하고 새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요소를 찾아내는 일을 하는 피트 마라는 2011년 메릴랜드 교외에 서식하는 어린 고양이새의 운명을 추적한 논문을 조류학 저널에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둥지를 떠난 직후 새끼의 79%가 고양이에 의해 죽었다. 고양이는 새를 먹지 않았다. 다만 참수만 했을 뿐이다. 고양이새가 고양이에게 죽임을 당하다니 아이러니 아닌가.

그 후 마라는 길고양이에 의한 새의 피해를 집계하기 시작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길고양이가 죽이는 새는 매년 24억마리에 달한다. 살충제나 유리창 충돌 등 인간에 의한 요인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마라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논문에서 제시한 처방은 살처분이었다. 생태계 보전을 위해 길고양이를 잡아 죽이라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마라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저 귀여운 킬러는 생각보다 치명적이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논문과 기사에 대해 대중은 크게 반발했다. “피트 마라를 안락사시키라”는 게 주요 반응이었다.

치명적인 본능

하늘을 나는 새가 고양이에게 당한다는 게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냥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펠리스 카투스의 본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펠리스 카투스는 뛰어난 감각이 있다. 낮은 조도에도 민감하고 작은 동물이 내는 높은 진동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먹잇감의 신선도를 냄새로 알 수 있을 정도로 후각도 뛰어나다. 게다가 발바닥은 부드럽고 푹신해서 움직일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 고양이 척추 뼈 사이에는 추간판이라는 탄력 있는 쿠션 패드가 있어서 빠르게 도약하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펠리스 카투스의 최고 무기는 접이식 발톱이다. 모든 고양잇과 동물은 발톱을 접었다 펼 수 있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접어놓기 때문에 닳지 않아 날카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 조용히 먹잇감을 쫓다가 공격하는 순간에만 발톱을 펴서 먹잇감을 효과적으로 잡고 공격할 수 있다. 엄청난 장점이다. 또한 접이식 발톱은 나무나 벽을 타고 오르는 데도 유리해서 먹이를 쫓고 더 높은 곳에서 자신의 영역을 살필 수 있다.

지금까지 33종의 동물을 멸종시킨 펠리스 카투스가 우리 인간과는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가 공생하며 교감하는 동물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생물 멸종은 막아야 한다. 모든 애묘인과 함께 고민할 문제다.

▲필자 이정모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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