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한 화면 뒤에 숨은 냉혹한 자본가의 두 얼굴
붉은색 스포츠카로 상징되는 '페라리'의 사랑과 야망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라스트 모히칸'부터 '콜래트럴', '알리' 등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들은 거친 남성성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삶에서 완벽을 꿈꾼다. 또 일에서도 정확성을 추구한다. 주인공이 범죄자이든, 기업가이든, 운동선수든 모두 마찬가지다.
영화 '페라리'의 주인공인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는 그런 마이클 만 감독의 구미에 정확히 부합하는 인물이다. 그는 전직 자동차 경주 선수이자 자동차의 혁신가이자 악명 높은 난봉꾼이다. 짙은 선글라스에 신경질적인 인상을 가진 페라리(아담 드라이버)는 이 전기 영화의 방향성을 대변한다.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이 작품은 파산 위기에 놓인 '페라리'의 최고이자 최악의 1년을 그리고 있다. 마이클 만은 브록 예이츠의 전기와 페라리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자동차 재벌 페라리가 파산 위기에 처한 1957년의 약 3개월의 기간에 초점을 좁힌다.
영화 속 페라리는 사랑하는 장남을 잃고 슬픔에 빠져 있으면서도 사생아까지 둔 애인 리나(셰일린 우들리)와의 복잡한 이중 생활을 이어간다. 그 와중에 아내 로라(페넬로페 크루즈)의 슬픔과 분노는 깊어만 간다. 또 고향인 모데나에 본사를 둔 마세라티의 경쟁자가 트랙 안팎에서 그를 괴롭힌다.
그는 파산 직전의 페라리를 살리기 위해 이탈리아의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펼쳐지는 1,000마일 도로 경주 밀레 밀리아 우승에 승부를 건다. 페라리는 젊은 드라이버 알폰소 데 포르타고(가브리엘 레오네)와 노련한 드라이버 피터 콜린스(잭 오코넬)와 손잡고 경쟁자들과 냉정한 승부를 펼친다.
보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인 붉은색 경주차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를 펼치는 경주 장면은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다. 밀레 밀리아 경기 당시 촬영한 사진을 고증 삼아 재현해 낸 영화 속 장면들은 강한 흡인력으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때로는 경주에 나서기 전 유서를 쓰는 드라이버의 고독이 드러나고, 자본가들의 피 튀기는 수 싸움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마초이자 위험한 승부사 페라리는 사생활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패배자가 된다. 페라리의 남성적 성취와 이기심 뒤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가정이 있음을 마이클 만 감독은 무심하게 보여준다. 또 거의 수습 불가의 대형 자동차 사고조차도 돈으로 덮는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여하튼 '페라리'는 상징물인 빨간색 스포츠카의 노란색 앰블럼처럼 화려하고 스펙타클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슬픔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휴먼 멜로 드라마에 가깝다. 모처럼 영화적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8일 개봉.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