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영, 우아하고 고독한 ‘60대 여성 킬러’를 입다

2025-04-29

영화 <파과>의 주인공 ‘조각’은 40년간 청부 살인을 해온 60대 여성 킬러다.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다. 사람 죽이는 일을 업으로 해온 노인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등이 굽었을까, 백발일까, 화려한 옷차림을 좋아할까. <파과>에서 조각 역을 맡은 배우 이혜영은 이 빈 칸들을 자신만의 독보적인 아우라로 채워 넣었다. 이혜영의 조각은 날렵하면서 우아하고, 곁을 주지 않지만 고독해 보인다.

“그 여자(조각)에게 느낀 매력은, 이름이 일단 멋있었고. 그녀의 수수께끼 같은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관심이 있었어요. 능력 있는 할머니잖아요. 부럽기도 했죠.”

<파과> 개봉을 앞둔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혜영이 말했다. 그는 “그렇게 오래 (연기)하고도 이런 기회를 또 잡았다”면서도 “이런 정도의 작품을 늘 만나는 것이 아니기에, 제게도 아주 특별한 영화”라고 했다.

<파과>는 구병모 작가의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이 원작을 각색해 민규동 감독이 연출한 액션 스릴러물이다. 청부살인업체 ‘신성방역’은 범죄자 등 질 나쁜 인간을 살해하는 것을 ‘방역’이라고 부른다. 20대부터 이곳에서 일한 ‘대모님,’ 조각은 살아 있는 전설이다.

세월에 따라 쌓인 경험이 조각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놨지만, 그만큼 그의 몸은 노쇠해졌다. 영화는 ‘한 물 간 게 아니냐’는 품평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던 어느 날, 혈기왕성한 30대 청년 킬러 ‘투우(김성철)’가 조각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이 영화에서 이혜영은 강도 높은 액션을 소화한다. 흉기로 급소를 군더더기 없이 노리는 손놀림과 민첩한 몸의 움직임으로 ‘60대 킬러’라는 정체성을 납득시킨다. 촬영 첫 날부터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혜영은 “싱크대에 부딪히는 장면에서 갈비뼈를 부딪쳤는데, 쉬지 않고 촬영을 이어가다가 갈비뼈 3대까지 나갔었다”고 했다.

“정말 몸 바쳐서 찍었다”는 그에게 어려운 것은 액션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절제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혜영은 “무술 감독으로부터 여자와 남자를 뛰어넘는, 기술을 발휘하면서도 감정을 절제하는 연기를 요구받았다”며 “가만히 있어도 나오는 몸의 노쇠함을 같이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액션 연습을 많이 안 하기도 했다”고 했다.

‘할머니 킬러’라는 역할은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기에, 연기하는 입장에서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 초반에는 ‘이혜영’하면 생각나는 우아한 목소리 톤이 액션 영화에 묻어날 수 있을지 고민도 했다고 한다. “소리를 낮고 거칠게 하거나, 쉰 목소리를 내보기도 했다”는 이혜영은 결국 본래의 톤을 살려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세련된 카리스마를 지닌 ‘조각’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혜영은 오는 5월 <헤다 가블러> 재연으로 8년 만의 연극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연극은 끝나는 날까지 완벽하지 않다”며 “오는 관객에 맞춰 늘 낯설게, 새롭게, 청순하면서 노련하게 해야 하는 것”이 연극 무대의 매력이라고 했다. 느낌 그대로의 연기를 중시하는 이혜영에게 매 컷을 콘티대로 완벽하게 찍어야 하는 영화 현장은 오히려 제약이 많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이번 <파과>를 찍으며, 이혜영은 연기에 있어 통제를 받아보고 싶기도, 통제 당하고 싶지 않기도 한 양면적인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쓸모 있는 배우로 살아남되, ‘통제 당하지 않겠다!’ 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좋은 ‘그릇’을 만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그간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제게 고정된 이미지가 있기도 하다”며 “<파과> 같은 액션 영화를 하면서 그 이미지가 (캐릭터와 서로) 힘을 받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조각처럼 딱 내 옷에 맞는 듯한 캐릭터를 만난 작품을 꼽자면, 많지 않다”는 그는 “앞으로 어떤 그릇을 만나서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좋은 그릇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43회 브뤼셀판타스틱 영화제, 제15회 베이징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인 <파과>는 오는 3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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