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아래 쪽으로 깎아지른 듯 날카로운 모서리를 드러낸 V자. 파랑, 빨강, 하양, 노랑색 물감의 선명한 대비와 칼로 자른 듯 명확한 경계가 강렬한 느낌을 준다. 나이프로 얇게 펴 바른듯한 투명한 물감은 독특한 질감을 드러낸다.
미국의 추상화가 케네스 놀랜드(1924~2010)의 ‘Profile’(1985)다. 날카롭게 테두리진 단순한 형태에 색면을 강조했던 ‘하드에지(Hard Edge) 페인팅’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전후 미국에서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가 미술계를 뜨겁게 달군 뒤 등장한 일군의 예술가들은 회화에서 ‘인간다움’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기계가 그린 것처럼 정확하고 차가운 선, 미니멀한 형태, 색채 자체에 집중한 그림을 선보였다. 워싱턴색채파의 일원이었던 놀랜드는 1950~60년대 미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놀랜드의 1960년대 작품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대표작 11점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30년 만에 열리는 전시로, 놀랜드 회화의 발전과 변화 과정을 잘 살펴볼 수 있다.
놀랜드는 초기 원형회화 ‘Circles’ 시리즈에서 양궁 과녁과 같은 동심원의 형태에 색을 채워 넣으며 색채의 관계를 탐구했다. 이후 날카로운 V자 형태 등의 ‘하드에지’로 변모한다.
놀랜드는 캔버스가 직사각형이어여 한다는 공식도 깨뜨렸다. 가로로 좁고 길게 뻗은 다이아몬드 형태의 ‘Echo Field’(1966), 캔버스를 자르고 모서리를 비틀어 비선형 형태를 띤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 시리즈도 볼 수 있다.
놀랜드는 유화 물감 대신 아크릴물감을 즐겨 썼다. 빠르게 건조되는 아크릴물감은 유화와 달리 수정이 어려웠는데, 놀랜드는 스스로를 ‘원샷 화가’라고 표현했다.
놀랜드의 실험은 3차원으로 나아갔다. 전시장에선 캔버스 테두리를 아크릴유리로 감싼 입체적 작품 ‘Flares, Bend’(1990)도 볼 수 있다. 볼록렌즈와 오목렌즈 같은 휘어진 캔버스들을 한두 개의 지점에서만 접촉하는 모습으로, 형태의 다양성과 입체감을 강조했다.
평생 자를 대고 그은 듯한 선, 선명한 색채, 기하학적 구성 등 엄격한 형식미를 추구했던 놀랜드가 말년에 그린 그림이 인상적이다. 생애 마지막 시기, 그는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었나 보다. 초기의 원형 형태로 돌아갔지만, 그림에서 보이는 건 희미한 선과 작가의 제스처가 살아있는 붓터치, 투명한 색의 번짐과 겹침이다. 자신이 만든 엄격한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붓을 휘두르는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페이스갤러리 3층에선 놀랜드와 같은 워싱턴 색채학파였던 미국 추상화가 샘 길리엄(1933~2022)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캔버스를 천장에 매단 드레이프 회화, 일본 화지를 접고 염색해 만든 작업들이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