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선, 인물중심 보도 치우쳐…미국의 미래 분석해야

2024-12-02

독자위원회 | 중앙일보를 말하다

제56회 중앙일보 독자위원회가 지난달 27일 본사 9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오세정 위원장(전 서울대 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회의에서 독자위원들은 11월 한 달간 중앙일보 지면과 디지털에 실린 주요 기사를 놓고 조언과 함께 고언을 내놨다.

▶이영주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이사장=4일자 1·8면, 5일자 8면에 비급여 진료 문제를 다룬 기획 기사가 잇따랐는데, 시의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비급여가 많은 분야로 의사가 쏠리며 필수 의료가 미약해지고, 과잉 비급여 진료로 건보 재정을 갉아먹는 현실을 잘 분석했다. 다만 해결 방안 제시 부분이 조금 미흡해 아쉬웠다. 시장경제 원리 등이 작동하는 영역이라 정부의 개입·규제가 쉽지 않지만, 우리나라에 적합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찾아보고 제시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11일자 12면, 15일자 6면에 검찰 특경비 전액 삭감 등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검찰의 문제점과 함께 검찰에 대한 과도한 공격의 문제점에 관해서도 심도 있게 보도를 이어가기 바란다.

▶지철호 법무법인 원 고문=6일자 10면에 ‘대통령실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유산취득세로 전환 추진”’ 기사가 게재됐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윤석열 정부 2년 반 주요 정책 성과 보고에서 밝힌 내용을 기사화했다. 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국회에 제출도 안 한 내용을 ‘인하하겠다’고 하고, 그걸 그대로 보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여야가 대립하고 정치권이 싸우는 게 너무 많이 보도된다. 14일자 1·6면에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 원으로 올리는 등 여야가 민생법안에 합의했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통합의 가치를 중앙에 두는’ 중앙일보라면 이런 기사를 더 크게, 더 많이 보도해줬으면 한다.

▶이재국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제목에 따옴표를 굉장히 많이 쓴다. 겹따옴표는 발언의 진실성에 대한 책임을 인용 출처에 돌리는 게 될 수 있다.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홑따옴표도 문제다. 22일자 B2면 제목에 ‘독과점 조사’, B3면 제목엔 ‘현대차 SDV’ 같은 따옴표 제목이 들어갔는데 따옴표를 붙일 이유가 없다고 본다. 강조를 위해 사용한다 해도 남발하면 품격이 떨어진다.

비슷한 맥락에서 같은 날짜 8면 ‘미국 가치투자의 전설’ 하워드 막스 인터뷰에 그가 (인터뷰) 현장에서 그린 그림 사진을 쓰고, 그걸 그래프로 똑같이 만들어 넣었다. 굳이 둘 다 실을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18일자 B1면 기사는 금융권에서 소위 돈 많은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서비스를 키운다는 내용인데, 굳이 제목(연 50% 시장 커진다…은행 꽂힌 ‘황금 지팡이’)에 지팡이라는 표현을 써야 했는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읽으면서 좀 불편했다. 지팡이는 노인을 지칭할 때 일반적으로 쓰는 상징이긴 하지만, 주로 활동에 지장 있는 분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시니어 전체를 부정적으로 보게 한 게 아닌가 싶다. 저도 여대에 있지만, 동덕여대 사태를 시위 사진 한장으로 처리한 건 너무 약하지 않았나 싶다. 이 이슈를 젠더 갈등으로 가져갈 게 아니라, 여대의 존재 필요성을 진단하는 등 ‘방향을 잡아주는’ 기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주형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미국 대선 이후 관련 보도가 과도하게 인물 중심이다. 미국과 세계 민주주의에 던지는 무겁고 어려운 메시지가 많은데, 그런 각도의 분석은 별로 없다. 공화당이 행정권력, 상·하원 입법권력뿐 아니라 지방권력까지 갖게 됐다. 사법권력도 이미 여러 해에 걸쳐 빨간색(보수성향 재판관)으로 채워졌다. 입법·행정·사법 사이의 견제와 균형뿐 아니라, 주들끼리 경쟁하고 주 정부와 연방 정부가 경쟁하는 것이 중요한데, 전부 특정 정치 세력이 장악하게 됐다. 역사적으로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이 앞으로 어떻게 갈지 분석 기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14일 미국 국방장관 지명 (온라인) 기사 첫 문장에 영어 욕을 그대로 인용했다. 우리 말로는 “이 자식 대체 누구야” 이렇게 (번역)했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훨씬 심한 욕이다. 스펠링이 다 나와 있어 놀랐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상법 개정안 관련해 나온 기사들이 주로 회사나 이사회·정부 쪽 이야기다. 주주 관점의 이야기는 이렇다 할 게 없다.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이야기가 같이 나왔으면 좋겠다.

11일자 1면 윤 대통령 임기 반환점 5개 일간지 기사 댓글 55만 개를 분석한 기사의 데이터 분석 방법은 10년 전과 똑같다. 차라리 별도의 온라인 연결 페이지 같은 걸 만들어 (관련 데이터를) 투명하게 보여주었더라면 좋았겠다. 8면 그래픽은 윤석열 정부의 2년과 박근혜 정부의 4년 데이터를 나란히 보여주며, ‘(윤 정부의) 탄핵론 이슈 강도가 (박 정부보다) 약하다’는 의미로 썼다. 타임 스케일(시간 척도) 자체를 잘못한, 데이터 시각화의 잘못된 사례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양학과 교수=12일자 1·4·5면에 중장년층의 실직 문제를 다뤘는데, 굉장히 시의적절한 기사였다고 생각한다. 마이크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대기업·중소기업의 희망퇴직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취재도 하며, 연공서열 임금 체계의 문제를 정확하게 제시했다. 다만 ‘신사오정’이라고 했는데, 사실 과거 ‘사오정’과 큰 차이가 없다. (중장년층의 실직이) 과거에 높다가 이후 감소했다가 다시 조금 증가한 상황이다. 과거와 뭐가 다른지 (구체적으로) 얘기해 줬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다. 신사오정도 문제지만 최근 언론에서 정년 연장도 이슈가 되고 있다. 사오정 문제도 정리 안 된 나라에서 정년 연장 문제를 갖고 갑론을박하는 상황 자체가…. 그런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지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세정 위원장(전 서울대 총장)=좋았던 기사 중의 하나가 (중앙선데이)16일자 1·8·9면에 크게 쓴 KAIST 실패 연구소의 ‘망한 과제’ 기사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실패하면 안 된다’고 하다가 이제 ‘실패를 좀 해야 뭔가 획기적인 게 나온다’는 걸 점점 인식하는 상황에서 (기사가) 굉장히 재미있더라.

19·20·21일자에 대학평가 기사가 나왔다. 대학평가가 중앙일보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됐는데, 종합 순위를 계속해서 크게 다루는 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오히려 20일자에 고등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을 설문 조사한 기사가 좋았다. 건국대·동국대가 상당히 올랐는데, 그 이유가 거기서 놀고 싶다는 거다. 중요한 문제다. 사실 대학 생활하는 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교육 혁신 분야에서 한기대가 높이 나왔다’던가 ‘인하대가 학생 이탈률이 낮다’ 같이 어떤 분야에서 어느 대학이 잘한다는 걸 부각하는 기사가 좋았다. 지금은 종합 등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대학들이 다양하게 특성화를 해야 하는데 거기에 도움이 되는 평가를 했으면 좋겠다.

▶홍지혜 오픈갤러리 디렉터=15일 8면 ‘더 인터뷰’ 기사(‘사탕처럼 달디단 K컬처, 스토리텔링 입혀야 안 물린다’)를 재미있게 읽었다. 아이돌(BTS)부터 영화(기생충)·드라마(오징어 게임)·소설(한강)까지, 바야흐로 K컬처가 각광받는 시대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어떻게 성장했고 어떻게 우리 삶에 기여할지에 대한 분석은 어렵다. 그래서 문화예술 기사는 ‘좋은 게 좋은 것’으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은데,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교수의 의견을 빌려 K컬처를 분석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작정 ‘좋다’ ‘훌륭하다’ ‘K컬처의 시대가 온다’ 같은 식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부족한 점, 예를 들면 반복과 안주의 늪 등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해 준 귀한 기사였다. 앞으로도 ‘더 인터뷰’를 통해 세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많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국내 모든 언론이 24일 일본에서 개최된 사도광산 추도식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중앙일보의 경우 25일자에 ‘일 사도광산 3연타 뒤통수, 정부의 안일함’이라는 (온라인) 제목으로 문제의 핵심을 잘 언급했다. 이 보도에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과정은 물론 역사적인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우리 정부가 보인 그간의 행태 등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다만 27일 자 6면에 ‘한·일 외교부 장관 양국협력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양국 장관의 이탈리아 회담 내용을 보도했는데, 굳이 이런 보도를 통해서 한·일 협력의 필요성을 전달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오히려 우리 정부의 향후 태도에 대해 강경하게 강조하는 것이, 건설적인 한·일 관계에 부합하는 취재 스탠스라고 생각한다.

정리=김한별 사회에디터, 목재경 인턴 kim.hanb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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