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트스트림의 덫
마리옹 반 렌테르겜 지음
권지현 옮김
롤러코스터
“우리는 노르트스트림2가 완공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생각이 들어맞았죠.” 우크라이나 석유∙천연가스 국영기업인 나프토가스의 CEO 안드리이 코볼리에우의 말이다. 노르트스트림1, 2는 러시아와 독일 사이 1200여㎞를 발트해 해저로 직접 연결하는 각 2개씩 모두 4개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다.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독일과 유럽에 연간 110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
노르트스트림1은 2011년 4월에, 노르트스트림2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5개월 전인 2021년 9월에 완공됐다. 코볼리에우는 기회만 되면 “발트해에 설치하는 두 번째 천연가스 파이프라인(노르트스트림2)은 목적이 하나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체를 병합하는 일이다”라고 주변국들을 설득했으나 결국 그의 호소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의 대기자이자 칼럼니스트인 마리옹 반 렌테르겜이 지은 『노르트스트림의 덫』 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 포석과 러시아 제국 부활을 위한 ‘트로이의 목마’ 역할을 120% 해낸 노르트스트림 건설 과정의 전모를 파헤쳤다. 이 책은 코볼리에우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폴란드, 발트3국 등의 줄기찬 경고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고 나약한 독일 등 서유럽 국가 지도자들과 기업인들이 푸틴이 친 덫에 보기 좋게 걸려 버린 지난 20년 동안의 일지를 ‘역사의 교훈’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발트해의 덴마크령 보른홀름섬 인근 해저 80m에 묻힌 노르트스트림1, 2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4개 중 3개 라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7개월이 지난 2022년 9월 26일 원인 모를 폭파사고가 일어났다. 폭파됐을 당시 파이프라인들은 가동 중이지는 않았지만 천연가스로 가득 차 있었다. 폭발로 생긴 구멍은 시멘트와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막아 놓은 상태다. 누가 과연 노르트스트림1, 2를 폭파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각국이 조사 중이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노르트스트림1, 2가 개통하기 전에는 유럽으로 수출되는 러시아 천연가스 대부분이 ‘브라더후드’ ‘소유스’ ‘야말’ 등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파이프라인을 거쳐야 했다. 푸틴과 러시아로서는 서유럽으로 직접 수출하는 노르트스트림이 완공되기 전에는 우크라이나와 전면전을 벌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누가 봐도 뻔한 상황인데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은 도대체 왜 푸틴이 쳐 놓은 함정에 그렇게 쉽게 빠질 수밖에 없었나. 꼭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라는 정답이 나온 후에야 푸틴의 책략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나.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오답 풀이 과정과 전략적 오류를 디테일하게 추적했다.
『노르트스트림의 덫』은 푸틴에 일찌감치 먹잇감으로 포섭돼 ‘악마의 계약’을 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야 그렇다 치더라고 옛소련권 동독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서유럽 주요국 지도자들까지 푸틴에게 농락당하게 된 과정 그리고 그들이 내보인 호의와 순진함도 자세하게 분석했다. 노르트스트림 지지자들은 “독일이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하는 것은 러시아가 독일에 의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른바 ‘무역을 통한 변화’ 논리를 전개하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장악할 일은 없다”고 오판했다. 야욕에 불타는 푸틴을 얕잡아 봐도 한참 얕잡아 본 것이다.
석 달 후면 만 3년이 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값싼 러시아 천연가스를 받아 쓰기 위해 푸틴을 과소평가했던 독일과 유럽의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어떤 게 과연 국익에 맞는 결정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 책을 일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