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 일을 ‘하지 않는’ 것

2025-04-09

스스로를 ‘보통 사람’으로 칭하며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는 말을 달고 산 대통령이 있었다. 5년 동안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도통 기억이 없지만, 보통 사람 입장에서 확실한 것은, 그가 ‘보통 사람’이라고 ‘믿을’ 만한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보통 사람은 침대 밑이나 책갈피 사이에 몇만원 정도 숨겨놓지, 그토록 큰 비자금을 만들 수 없다. 또 하나, 보통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누가 보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그는 보통 사람 기준에 한참 미달이다. 욕망을 향해 달렸을 뿐 삶의 지향, 즉 기본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네바 출신 명문 귀족인 과학자가 있었다. ‘생명의 발생과 원인’을 탐구하던 그는, 끝내 “세상이 창조된 이후 가장 현명하다는 사람들이 바라고 연구하던” 비밀 하나를 발견한다. 바로 무생물에 생명을 입히는 일이었다. 우주의 신비를 풀어낸 과학자는 시체 조각들을 덧대어 “어두운 세상에 폭포처럼 빛이 쏟아지게” 할 만한 존재를 탄생시킨다. 맞다. 1818년 출간된 영국 작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애초 바람은 “아름다운 생명체”였다. 시체를 찾아 무덤가를 헤매면서도 신경은 온통 아름다움에 쏠려 있었다. 팔과 다리의 비율은 물론 신체 여러 부분을 구성하면서 아름다운 것만 골랐다. 결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기괴한 외모 때문에 괴물로 불렸지만 애초 심성만큼은 고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흉측한 몰골만으로 평가했고, 괴물은 그런 사람들이 미워졌다. 그를 탄생시킨 주인마저 “공포와 혐오감”을 느껴 도망치지 않았던가. 괴물은 그렇게 인간 사회의 모순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영민했던 괴물은 거대한 부와 가난, 계급 불평등 등 세상 부조리까지 단박에 알아차린다. 그에게 남은 건 파괴적 본능뿐이었다. 살인과 방화를 서슴지 않았다. 불안한 것은 괴물이 아니라 그를 만들어낸 빅터 프랑켄슈타인이었다. 누가 보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 사람인데, 괴물이 이미 그 경계, 즉 기본을 한참 넘어서 버렸기 때문에 창조자는 두려웠다.

영화 <승부>는 조훈현과 이창호 사제의 승부에 초점을 맞춘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을 살아가는 원칙, 곧 ‘기본’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겠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제자 이창호에게 패한 조훈현의 각성이 아니라 제자에게 ‘기본’을 가르치는 장면이었다. 자신보다 바둑을 오래 배운 형들을 이긴 이창호는 기고만장했는데, 그 밤에 조훈현은 바둑의 ‘기본’만으로 제자를 압도하고는 한마디 던진다. “천재, 신동, 사람들이 하는 말하는 거 믿지 마! 까불지 말고 기본부터 익혀.” 앞에 앉은 이를 꺾어야만 내가 사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를 사는 사람들에게 기본이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바둑판 위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그 앞을 벗어나면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 싶다. 조훈현과 이창호는 (적어도 영화에서는) 기본이라는 미덕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다시 묻는다. 기본이란 무엇인가. 누가 보든지 말든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을 기본을 잘 갖춘 사람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대개 ‘나쁜’ 일이기에, 그를 나쁜 사람이라도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언감생심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내 스스로에게 던지는 답은 이렇다. 누가 보고 있을 때만이라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보통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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