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하지만, 쉽지 않은 길 ‘북극항로’

2025-10-22

지난 13일 북극항로의 첫 상업 운항에 나선 중국 ‘하이지에’사의 컨테이너선 ‘이스탄불 브리지’호가 마침내 영국 펠릭스토항에 도착했다. 중국 저장성 닝보·저우산항에서 출발한 지 20일 만이다. 당초에는 항해 기간을 18일로 예상했지만 조금 늦어졌다. 그래도 수에즈운하 노선(40일), 아프리카 희망봉 노선(50일)의 절반 이하다. 하이지에는 중국-유럽 주요 도시를 도는 이 노선을 정기적으로 운항한다. 그간 ‘탐험의 영역’이던 북극 길이 실제 상업 네트워크에 편입되는 기념비적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간 짧지만 운항비는 더 들 수도

러시아 관계와 환경·안전도 변수

정치 아닌 경제·외교로 풀어야

중앙일보 취재진이 지난달 방문한 노르웨이 트롬쇠와 그린란드 누크는 북극항로의 거점 항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이미 한껏 부풀어 있었다. 취재진이 만난 북극경제이사회(AEC)의 마즈 크비스트 프레데릭센 사무국장은 “에너지 자원을 중심으로 활동량이 점점 늘고 있다. 수산물과 에너지 자원도 풍부하다”며 “북극 경제권이 상업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그린란드를 방문하며 북극항로 개척의 초석을 다졌다면, 박근혜 정부에선 5차례 시범 운항에 나서며 실험을 마쳤다. 지구 온난화로 2030년 즈음이면 연중 북극해 항해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이재명 정부는 국정 과제로 북극항로 개척을 본격 추진한다. 수에즈운하 노선 덕에 글로벌 물류허브로 도약한 싱가포르처럼, 한국도 북극항로에선 요충지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실제 북극항로의 가치는 크다. 단순히 운항 거리·기간을 크게 단축시켜서만이 아니다. 북극해 주변에는 석유와 천연가스, 희토류 자원이 풍부하다. 에너지 수입 의존국이자 세계 10위권 무역국인 한국 입장에선 미래 전략으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장밋빛만 드리워져 있는 게 아니다. 당장 해운업계에서는 “현재로썬 생각만큼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중간에 컨테이너를 내리고 실을 상업항이 없는데다 쇄빙선·내빙선 제작 비용, 높은 보험료, 항만 인프라 부족, 불규칙한 빙해 구간 등을 감안하면 제약이 많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짧지만, 되려 비싼’ 항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해운업체 관계자는 “(내수 시장이 큰) 중국의 해운사는 자국 내에서 여러 곳을 돌고 출발하면 된다. 반면 한국은 중국·대만·싱가포르 등을 거쳐야 하는데, 그런 뒤 다시 북쪽으로 향하는 건 동선상 비효율적”이라고 짚었다.

북극해 연안의 53%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가 얼어붙은 점도 걸림돌이다. CJ대한통운이 2015년 북극항로를 시범 운항하는 과정에서 영국인 엔지니어들이 러시아 정부로부터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중간에 항해를 포기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외 북극 7개국과의 협력도 필수다.

이뿐이 아니다. “북극권에선 액화천연가스나 수소 같은 친환경 연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폴라 코드’를 따라야 한다”(정지훈 한국북극연구컨소시엄 사무총장), “기상변화로 운항에 차질이 생기거나, 고립될 수 있기에 실시간 정보 수집을 위한 위성개발 등이 필요하다”(박진구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한국은 북극 시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정부의 입장도 같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현재 기술적으로는 걸림돌이 있으나 북극의 얼음 면적 축소에 따른 북극항로 개방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며 북극항로 거점 육성, 관련 산업 집적화 등의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도 있다. 한국은 전기·수소·암모니아 등을 활용한 친환경 선박을 제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다. 2013년에는 일본과 함께 북극 이사회 옵서버로도 가입해 북극 7개국 관계도 나쁘지 않다.

우려되는 것은 정치권에서 나오는 ‘지정학적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마지막 역사적 기회’ 같은 말에 현혹돼 조급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국회에서 발의된 북극항로 관련 특별법만 벌써 5건이다. 장기적인 사업성과 북극항로를 둘러싼 패권 지형을 고려 않고, 의욕만 앞세워 밀어붙인다면 결국 득보다 실이 클 수밖에 없다.

북극항로는 정치적 셈법이 아니라 “경제적·과학적·외교적으로 다뤄야 하는 분야”라는 게 취재진이 접촉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조언이다. 이들의 말대로 ▶향후 5년은 쇄빙 컨테이너선 투자를 늘리고 ▶원유·천연가스 등 자원 중심의 노선 전략을 추진하며 ▶공급망 불안에 대비하는 보조적 해상 루트로 활용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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