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플러스|해양수산부의 북극항로 개척 마스터플랜
새 바닷길 해저 지형과 기상 자료 등 데이터 확보 작업 순항
국내 어촌·연안 경제 활성화와 수산·해양 산업 혁신에도 만전
해양수산부는 수산청과 해운항만청 등 13개 부·처·청에 분산돼 있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을 신설하면서 1996년 8월 8일 공식 출범했다.
해수부는 해운업 육성부터 항만 건설과 운영, 수산자원 관리와 수산업 진흥, 해양환경 보전과 연안·해양안전 관리, 어촌·해양자원 개발, 해양과학기술 진흥 등 해양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중앙행정관기관임에도 조직이 공중분해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던 2008년 정부 부처 축소 방침에 따라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로 그 기능이 이관됐다가 2013년 재출범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것이다. 해수부는 이듬해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로 또 한 차례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해수부의 이 같은 부침의 역사는 더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극항로 시대’ 개막을 앞두고 그 주무 부처인 해수부의 기능과 위상 강화 등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진 까닭이다. 러시아 등 주요 국가는 북극항로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핵심 공약 중 하나인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현실화하면서 북극항로 개척에 힘을 보태고 있다.

2030년께 열릴 ‘뉴 실크로드’
북극항로는 그린란드 남단과 베일해역 북측에 해당하는 북극해역을 운항하는 항로를 뜻한다. 부산항과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을 연결하는 최단거리 항로로, 수에즈운하 등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기존 항로 대비 운항 일수를 30일에서 20일로 크게 줄일 수 있다.
문제는 바다얼음(海氷)이다. 7~11월에는 러시아 시베리아 연안의 얼음이 녹아 선박의 통항이 가능하지만, 캐나다·그린란드 인근은 한여름에도 해빙이 존재한다. 얼음을 깨부숴 바닷길을 내는 쇄빙선도 북극해 인근 얼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러시아와 중국, 유럽 일부 국가 정도만 특정 기간에 한해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이유다.
역설적이게도 지구 온난화는 새 바닷길의 연중 개방을 재촉하고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9월 평균 북극 바다얼음 면적은 1979년 700만㎢에서 지난해 438만㎢로 약 37% 감소했다. 북극항로를 통한 물동량도 증가세다. 2014년 398만t에서 지난해 3790만t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연구기관별로 그 예측에 차이가 있지만, 이르면 2030년께 연중 항해가 가능한 새 바닷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자국 연안을 따라 북극항로를 통과하는 선박에 대해 허가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역시 북극항로에 반드시 올라타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만, 북극항로 개척에 따른 경제적 효과 등에 대한 사전 검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 당장 내년부터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데 대한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부산을 글로벌 해양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지에는 공감하지만, 북극항로 개척과 관련한 경제성 검증은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교 리스크와 관련한 대비책도 부실한 상태에서 55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혈세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조 의원은 “부산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선박은 주로 싱가포르 등 주요 환적항을 거치면서 물류 효율성을 높이지만, 북극항로는 러시아 외에 기항항이 전무하다”며 “유럽행 물동량은 현재 부산항 전체의 5.6%에 불과한데, 이 5% 남짓을 위해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는 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존 항로 기준으로만 놓고 봤을 때 유럽으로 향하는 물동량이 6%가 채 안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극항로가 본격적으로 개방돼 부산항이 출발항 및 환적항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경우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외교 리스크 관련 우려에 대해서는 “러·우 전쟁이 종식될 때까지 마냥 기다리면서 손을 놓고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해수부는 이와 관련해 최근 전문 연구 기관에 ‘북극항로 상업 운항 경제성 분석 용역’을 의뢰한 상태다.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 등 전문가 20인을 주축으로 한 ‘북극항로 자문위원회’를 공식 출범하기도 했다.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북극항로 개척은 물류 산업과 전후방 산업의 동반 성장을 통해 남부지방을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 요인”이라며 “자문위원들의 고견을 토대로 북극항로 개척 정책을 보다 면밀히 설계하겠다”고 강조했다.
북극항로에서 새 기회를 찾다
해수부는 북극항로 개척과 관련한 자체 연구 데이터 확보 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국내 유일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를 앞세워서다.
아라온호는 16번째 북극해 탐사 항해를 최근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91일간 베링해와 동시베리아해, 축치해, 보퍼트해 등 북극 주요 해역을 누비면서 북극항로의 안전하고 효율적 운영을 위한 해저 지형과 기상 데이터 등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바다얼음 감소가 인접한 생태계에 미친 영향과 북극해 해저 동토층 붕괴 현상 등에 대한 정밀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해수부는 북극해의 ‘대서양화(Atlantification)’ 현상이 태평양과 닿은 서북극해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확인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대서양화는 기후 변화로 대서양 바닷물의 북극해 유입이 늘면서 따뜻하고 짠 대서양 해수의 특성이 더욱 확산하는 현상이다. 대서양화가 진행되면 북극해의 염분 비율과 수온이 높아진다. 이 열이 표층까지 도달할 경우 바다얼음을 녹일 수도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극지연구소 조경호·정진영·양은진 박사 연구팀은 미국 알래스카대 연구팀 등과 함께 2017년부터 7년간 서북극해의 동시베리아해에 한국형 장기계류관측 시스템을 운용해 대서양화 현상이 강화되는 것을 확인하고, 지난 3월 말 그간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대서양화의 영향을 받은 고온·고염의 바닷물은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아 북극해 중층부에 위치하는데, 연구팀이 서북극해에서 관측한 고온·고염 바닷물층 상단의 높이는 2000년대 초와 비교했을 때 약 20년 만에 90m가량 상승했다. 대서양화가 북극해 반대편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서북극해에서 연 단위 장기 관측을 통해 대서양화의 수직적 변화를 제시한 첫 사례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번 연구는 현장 접근이 어렵고, 선행 연구도 부족했던 서북극해의 변화를 우리 독자 기술을 통해 심층적으로 분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해수부는 부산 이전을 계기로 국내 어촌·연안 경제 활성화와 수산·해양 산업 혁신에도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어촌의 열악한 정주 여건과 양질의 일자리 부족, 높은 진입장벽 등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어촌 소멸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체계적으로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해수부는 우선, 어촌별 특성을 고려해 관광 기초 인프라를 비롯해 경제·문화·복지 시설 등의 생활기반을 맞춤 조성하고 안전 인프라 구축 지원에도 나서기로 했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기존 어촌 관련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는 한편, 내년에도 34개 어촌을 정부 안에 편성하는 등 신규 대상지도 지속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어촌 소멸 위기 극복에도 ‘진심’
해수부는 도시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섬·어촌 지역 어업인의 이동권 강화에도 공을 들이기로 했다. 어업인의 의료·생활·행정 복지 서비스 개선을 위한 ‘어(촌)복(지)버스’ 사업을 올해부터 농어촌상생기금을 활용해 추진한다. 내년부터는 병원 방문에 어려움이 있는 섬 지역 어업인의 건강관리 지원을 위한 ‘비대면 섬 닥터’ 사업을 정부재정사업으로 확대 추진할 예정이다.
해수부는 청년들이 어촌에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각별히 신경을 쓰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청년 귀어인을 위한 주거단지와 수산업 일자리, 어촌계 가입까지 패키지로 제공하는 ‘청년바다마을’ 조성사업을 올해부터 시작했다. 양식장 운영 경험이 부족한 청년 등 신규 어업인을 지원하기 위한 임대 양식장 지원 사업도 개선·확대할 계획이다. 귀어 후 최장 3년간 월 최대 110만원씩 지원하는 청년어촌정착지원금 대상 인원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해수부는 연안 경제 활성화의 일환으로 해양 관광 분야에서도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 기업과 관광 콘텐트를 공동 개발하는 한편, 복합해양레저관광도시 조성·국가해양생태공원 지정 등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크루즈·낚시 등 고부가가치관광 산업 육성도 적극 추진한다. 또한, 여객선 운임 지원 확대 등을 통해 섬 주민과 관광객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해수부는 해양 신산업 육성을 통한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해양수산생물 자원이 풍부한 지역별 생태계 특성을 반영해 해양 바이오산업 소재 개발, 인증 지원, 사업화로 이어지는 해양 바이오 특성화 거점을 4개 권역에 구축하는 중이다. 이를 통해 기업 성장, 고용 확대, 지속 가능한 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어촌·연안 경제 활성화를 뒷받침한다는 방침이다.
해수부는 지속 가능한 어촌 조성을 위한 수산업 패러다임 혁신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기후 변화로 어장과 어종이 바뀌는 것은 물론 고수온과 같은 기후 재해 위험이 증가한 데 따른 조치다. 이와 관련해 어선 어업은 감척 확대로 구조조정하되, 규모화·현대화를 병행하고, 총허용어획량 제도 중심으로 체계를 개편할 계획이다. 양식업의 경우 기후 위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후 위기 복원 해역 지정과 품종 전환, 위치 이전을 지원하는 한편, 기술집약적이고 기후 변화 영향이 적은 스마트 양식을 확산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전재수 장관은 “우리 어촌은 저탄소·친환경 식품이면서 차세대 ‘블루 푸드’로 주목받는 수산물의 공급기지이자 90만 수산업 종사자의 삶의 터전”이라며 “해수부는 앞으로도 어가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소멸 위험에 직면한 어촌의 든든한 울타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