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은 2009년 <맡겨진 소녀>에 이어 2021년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출간했다. 이 소설은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가 배경이다.
며칠째 나는, 아니 우리나라 국민 모두 몹시 심란한 상태여서 차분하게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약속한 일을 해야 했기에, 책장에서 짧은 소설 하나를 끄집어내, 단숨에 읽고는 심란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감동 때문이다. 감동은 스트레스를 이기는 힘이 있으니까. 이 소설에는 극적인 장면이나 주장 같은 건 없지만, 펄롱의 일과를 따라가는 묘사가 영상을 보는 것보다 더 구체적이라, 독자가 투명 인간이 되어 그들 속에 섞여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필롱의 일상은 일 또는 끝없는 걱정,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날로 이어진다. 가족과 연관된 일 말고 중요한 일이 있을까 생각하는 일조차 꽉 찬 일상의 그물을 뚫고 나오지 못한다.
선량한 주인공인 펄롱은 우연히 수녀원 창고에 갇혀있는 어린 여자를 목격한다. 그 후 남자의 내면은 동요한다. 남자를 가족의 울타리 밖으로 이끄는 생각의 흐름과 촘촘하게 돌아가는 일상이 대립하는데, 그 과정을 이끄는 문장이 따뜻하면서 서늘하고, 안 되겠지 싶다가도 뭔지 모를 기대를 품게 만든다.
어떤 선택으로 인해 내 가족과 나의 일상이 안락과 몰락의 경계에 선다면. 누가 누구에게 그 선택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소설 속 이웃인 미시즈 케호가 말한다.
“하지만 자네 정말 열심히 살아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딸들도 잘 키우고 있고, 알겠지만 그곳하고 세이트마거릿 학교 사이에는 얇은 담장 하나뿐이라고.”
펄롱은 자꾸 생각에 빠진다. 그러나 독자들을 향해 무슨 말을 하진 않는다. 그저 머리를 깎고, 선물을 사고, 이웃의 가게에 들른다. 그리고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돌연 다른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독자들은 펄롱과 함께 움직이면서, 함께 집으로 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펄롱은 결국 어린 여자를 구하는 자신의 이유를 찾는다.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 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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