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

2024-10-10

어느 시대건 미래지향적 태도와 과거지향적 태도는 거의 동시에 존재한다. 19세기 중‧후반 조선 근세 임오군란 이후 박영효, 김옥균 등의 개화파와 민영익, 김홍집 등의 수구파가 그러했다. 잉글랜드 내전(1642~1651년)에서의 왕당파와 의회파 간의 내전 중 군주와 의회의 대립도 그러한 면이 있다. 서양 미술사에서 미래지향적 태도를 보이는 모더니즘이 분리파, 야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러시아 아방가르드 등 다양한 전개를 벌이는 과정에도, 라틴 즉 그리스와 로마의 부활 등 과거를 추앙하는 신고전주의는 동시대에 고전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민선 7기에서 부유식 해상풍력 등 9개 성장 다리로 미래지향적 새로움을 추구했다면, 민선 8기에서 1967년 제1회 울산공업축제 아치를 다시 보여주는 과거지향적 회고는 시작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다. 2022년 7월 1일 제8대 김두겸 울산광역시장 취임식에 슬로건으로 내세운 게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이다. 김 시장은 취임식에서 “주력산업 혁신”과 “신산업 발전”으로 “산업수도 울산의 위상”을 되찾겠다고 했다.

위대하다는 표현은 보통 특정 인물에 대해 평할 때 사용한다. ‘위대한 개츠비’(소설, 피츠제럴드, 1925),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위대한 독재자’(영화, 찰리 채프린, 1940) 등 어느 인물이 “도량이나 능력, 업적 따위가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형용사로 사용된다. ‘위대한 환상’(영화, 장 르누아르, 1937), ‘위대한 유산’(소설, 찰스 디킨즈,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 1948)이 있으며, ‘위대한 사회’는 ‘1964년에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가난과 인종 차별 없애는 것을 주된 목표로 행한 정책’ 등 인물이 아닌 추상적 명사를 지칭하기도 한다. ‘위대한 실종’ (이근삼, 현대인의 비인간화를 비판한 희곡) 등으로 활용된다. 동사 ‘위대하다’는 “특별히 잘 대우하다”로 쓰인다.

“위대한 이상(偉大한 理想)”은 19세기에 발생한 그리스 민족주의의 고토 회복 의식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모든 그리스인을 아울러 대(大)그리스 국가를 이루려는 의식이다. 1844년에 국무총리인 콜레티스(Kolettis)가 연설에서 강하게 표출했고, 이후에 터키와의 영토 분쟁이 고조됐다. 20세기 초에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이 이루어지면서 점차 사그라들었다. “위대한”은 사람이 ‘유명한, 위대한’으로 쓰이지만, ‘위대한 오벨리스크’ 등 사물이 ‘멋진, 위대한’ 또는 수나 양적으로 ‘큰, 다량의, 다수의’ 뜻을 지니며 활용된다.

광역시 ‘도시’처럼 다수의 인간이 포함된, 대규모 물량과 다량의 사물이 포함된 대상에 ‘위대한’을 추가하기에는, ‘도시’는 너무나 추상적 대상이 될 수 있다. “위대한 울산”이라고 쓸 수 있기는 하나, ‘누가, 무엇을, 왜 “위대하다”고 평가했느냐’?를 전제로 한다. 우리 스스로 부르기보다 객관적으로 외부의 역사적 평가를 전제로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시청 광장 청결미 수확보다

지금 울산에 더 급한 일은?

“새로 만드는”이 수식하는 “위대한 울산”은 지금 울산이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표현이 “시정 비전”으로 울산시청 홈페이지에 등장했는데, “사후약방문”의 성격이 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새로 만드는’은 “대한민국 수도로 달려온 60년, 이제 새 시대 변화하는 흐름에 발맞추어 울산의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리겠다는 의미”로, ‘위대한 울산’은 “풍요로움과 품격이 가득한 세계 속의 도시로 성장하겠다는 의미”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상징적으로 시청 광장에 씨앗 뿌리듯 벼를 심었고, ‘청결미’를 가을에 수확했다.

이를 보며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은 뭘까?’하는 근본적 의문이 들었다. 울산시의 정의대로 ‘풍요로움과 품격이 가득한 세계 속의 도시로 성장하겠다는 의미’로 규정한다면 세계인의 평가를 전제로 한다. 또, 60년간의 울산의 노력이 ‘위대’했다고 평가된다면, 다시 씨를 뿌려 이를 이루는 데, 최소 60여 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래디컬리즘(Radicalism)을 우리는 흔히 급진주의라 부른다. 라틴어의 radix(뿌리, 根)에서 유래한 것으로 ‘뿌리를 내렸다’라든가, ‘근본으로부터’라는 래디컬(radical)의 의미로부터 시작된다. 급진주의로 해석되는 이 태도는 사회현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의향이나 운동을 나타내는데, 이 경우 래디컬이 ‘급진’으로 불리는 것은, 사회 변화를 위한 조건이 어때야 하고, 변화의 조건이 성숙했는지 고찰하지 않고 단번에 ‘저돌적’ 변화 방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부유식 해상풍력 등 민선 7기의 급진적 산업구조 변화 시도는 결국 사회를 뿌리부터 돌아보게 했다. 또 민선 8기의 과거지향적인 태도도 급진적 의미에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다.

울산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

오늘 울산에서 해야 할 일은 근본으로 돌아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를 들고 세계의 선박회사와 금융회사를 찾아다녔던 고 정주영 왕회장이 밟아간 길의 의미를 살펴보는 게 아니었을까? 시청 광장에 모를 심고 벼를 베는 상징적 일보다 더 급한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수출입국을 부르짖던 박정희도 없고, 정주영 왕 회장도, 최종현 회장도, 이병철 회장도 없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쌀의 고장 이천시에서는 SK하이닉스 기획 광고를 계기로 ‘반도체’를 ‘전자산업의 쌀’로 알고 반도체를 특산품으로 선정했다.

김두겸 시장은 35년 만에 “공업축제”를 부활했고, 랜드마크 조성 시도로 물의를 일으켰다. 울산 4분기 제조업 경기가 9분기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기업경기 전망지수(BSI)는 기준치(100)를 밑도는 80을 기록했다. 1분기에서 4분기 대비하면 86→112→93→80 으로 2분기 연속 하락했다. 매출액(102→93), 영업이익(97→86), 설비투자(97→91), 자금 사정(85→76) 등 4개 부문 지수는 모두 직전 분기 대비 큰 폭으로 하락해 기업의 체감 경영환경은 극히 부정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저출생극복울산추진본부가 출범해 일·가정 양립하는 기업문화 조성(상공계), 가족 친화적 금융상품 개발(금융계), 문제 원인과 해결책 연구 정책대안 제공(학계), 출산 막는 가족문화 저해 사안 개선 법률 지식 제공(법조계), 난임부부 의료혜택과 고령 임산부 안전 출산 지원(의료계), 출산과 가족의 중요성, 모성 보호의 필요성 인식(여성계), 저출생의 심각성, 출산의 기쁨을 홍보(언론계), 캠페인과 사회적 연대 강화(본부)를 주장했다.

울산 시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김두겸 시장은 임기 전반기는 경기침체, 인구감소 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추었고, 후반기는 울산 미래 60년 준비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한다. 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추고, 경제침체와 인구감소를 이겨낼 주체는 울산 시민들이다.

성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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