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더멘털 대비 환율 과도한 급등…투기세력의 '양털깎기' 지적도

2024-12-10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하려는 배경에는 최근의 시장 불안이 경제 펀더멘털 대비 과도하다는 분석이 깔려 있다. 탄핵 정국으로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고 있지만 현 사태가 수습 국면으로 전환하면 외환시장도 차츰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도 내포돼 있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의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정치적 안정이 회복되면 재정 완화가 재정 지속성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도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정부 부채비율은 상대적으로 낮고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도 계속해서 끌고 갈 것으로 전망된다”며 “국민연금의 상당한 해외 자산이 지나친 시장 고통 때 외환·증권시장을 지원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최근 원·달러 환율은 다른 주요국 통화 대비 가파르게 올랐다. 지난달 11일과 비교해 이달 9일 기준 달러 대비 원화 상승률은 2.45%로 유로화(-1.34%), 엔화(-1.97%), 위안화(1.54%)보다 높다. 이를 뒤집어 보면 정치 불안이 해소될 경우 시장 복원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허인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10일 “정치적 혼란이 끝나고 환율이 다시 1300원대로 복귀할 것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연기금의 환헤지를 유도하는 방식은 좋은 정책 아이디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경제 펀더멘털 대비 과도한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회의)를 열고 “과도한 시장 변동성에 대해서는 시장심리 반전을 거둘 수 있을 만큼 적극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경제부총리는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됐지만 우리 경제의 견조한 펀더멘털과 대외 건전성에 비해서는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면서 “시장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시장 안정 조치를 총동원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시장에서는 과도한 원화 가치 급락 뒤에 한국 시장의 불안을 이용하려는 투기 세력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드러났듯 한국 금융시장을 ‘양털깎기’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양털깎기는 국제 투기 자본이 신흥국 자산 가치를 끌어내린 뒤 헐값에 알짜배기 기업과 부동산을 쓸어담는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위기 당시 파이낸셜타임스(FT)의 ‘가라앉는 느낌(Sinking Feeling)’이라는 악의적인 보도가 나온 뒤 한국 금융시장이 타격을 입자 해외 투자자들이 물밀듯이 들어온 사례가 있다. 위기의 진원지는 미국으로 한국의 펀더멘털에는 큰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 당시 기재부는 이례적으로 해당 보도와 관련해 기자 브리핑을 열고 “근거도 빈약한 보도를 반복해 한국 경제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FT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번 계엄과 탄핵 사태도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에 변화가 없는 만큼 해외 투자자들이 변동성을 키운 뒤 투자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일부 외신의 대응이 과도한 측면도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포브스는 6일(현지 시간) “이번 계엄령이 한국을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으로 몰고 갈 가능성을 높인다”고 보도했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은 9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 금융시장이 이미 외국인 투자 자금은 물론 국내 투자자에게도 외면받는 상황에서 이번 정국이 자칫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해 양털깎기를 유발시킬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정국 불안으로 국내 금융시장과 경기 불안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으나 양털깎기와 같은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크다”고 짚었다.

이를 고려하면 국내 투자자들도 패닉에 빠지기보다는 한국 경제의 상황과 기업들의 실적 등을 고려해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내년 1%대 성장과 함께 고환율로 물가도 뛰어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금융과 외환시장이 타격을 받아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한발 물러서 냉정하게 상황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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