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 유니폼이 단순한 경기복을 넘어 하나의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BBC 15일 ‘축구, 패션, 그리고 레플리카 셔츠 등장’이라는 제목으로 축구 셔츠가 어떻게 산업과 문화, 개인의 취향을 아우르는 상징으로 변모했는지 역사를 짚었다.
BBC는 축구 유니폼의 상업화가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됐다고 전했다. 1970년대 초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 돈 레비는 스포츠웨어 회사 ‘애드미럴’ 창립자 버트 패트릭을 만났다. 그 만남이 축구 유니폼 산업 패러다임을 바꿨다. 당시만 해도 팀 셔츠는 대부분 단색 위주로 제작됐고, 팬들은 아무 상점에서나 비슷한 흰 셔츠를 살 수 있었다. 패트릭은 ‘디자인과 저작권’을 도입해 특정 구단만의 셔츠를 만들었고, 리즈는 그 대가로 후원을 받았다. 이후 리즈가 착용한 노란색 원정 유니폼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다른 구단들도 새 디자인 경쟁에 뛰어들었다. BBC는 “그때부터 유니폼은 장비’가 아니라 선물이 됐다”고 설명했다.
BBC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유니폼 문화 전환점으로 꼽았다. 컬러TV가 보급되며 팬들이 집에서도 각 팀의 색감과 패턴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비록 잉글랜드는 서독에 승부차기로 패했지만, ‘가슴에 사자 세 마리’가 그려진 유니폼은 영국 전역에서 품절 사태를 일으켰다. BBC는 “팀이 우승하지 않아도, 감정과 서사가 담긴 유니폼은 시대를 초월한 아이콘이 된다”고 전했다.

그 무렵 등장한 독일의 1990년 월드컵 유니폼은 지금까지도 ‘복고 셔츠 시장’을 이끈다. 이 셔츠를 계기로 더그 비어턴과 매튜 데일은 중고 셔츠를 수집·판매하는 회사를 세웠고, 그들이 만든 ‘클래식 풋볼 셔츠’는 현재 4000만 파운드 규모 산업으로 성장했다. 비어턴은 “처음엔 단지 ‘이탈리아90’ 모든 셔츠를 모으고 싶었다. 그런데 시중엔 절반만 팔고 나머지는 구하기 어려웠다”며 “그게 복고 셔츠 시장의 출발이었다”고 말했다.
BBC는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을 또 다른 분기점으로 꼽았다. 이듬해부터 모든 선수 유니폼에 등번호와 이름이 표기되면서 팬들은 단순히 ‘팀’을 응원하는 수준을 넘어 ‘선수 개인’을 상징하는 셔츠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복제품(Replica shirt) 판매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복고와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진 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이었다. BBC는 “나이지리아의 독창적인 지그재그 패턴 유니폼이 세계 패션 브랜드들까지 자극했다”고 평가했다. 당시 나이키가 제작한 이 유니폼은 예약 3시간 만에 품절됐다. 이후 SNS에는 “정품을 구할 수 있다”는 가짜 계정들이 등장했고, 위조 셔츠가 시장에 넘쳐났다. 이에 따라 공식 판매사들은 위조품을 폐기하고 인증 시스템을 강화했다.
2019년 프랑스 여자월드컵과 2022·2025 유로대회 이후 여성들의 취향에 맞는 유니폼이 제작됐다. BBC는 “여성 팬들은 남성 유니폼을 입을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여성 축구 전문 브랜드 ‘Foudys’ 관계자는 “팬들은 해리 케인보다 여자 선수들의 셔츠를 찾는 팬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BBC는 복고 셔츠 시장의 미래를 낙관했다. 축구 역사학자 피터 케니 존스는 “이 산업은 멈추지 않는다. 매 시즌 새로운 셔츠가 출시되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또 ‘레트로’가 된다”고 말했다. BBC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1백만 장의 복고 셔츠가 거래 중이며, 일부 희귀 유니폼은 수백만 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예술 사진가 루이스 베버는 “누군가에겐 90년대 칼라일 셔츠가 ‘성배’일 수도 있다”며 “결국 유니폼의 가치는 성적이 아니라 기억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BBC는 “축구 셔츠는 스포츠 상징이자 개인 정체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패션 언어가 됐다”고 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