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배경이 되는 일

2024-11-20

사진을 찍는 남녀의 뒤로 가다가

찰칵, 내 뒷모습이 찍혔네

순간 알았네

저이들 뒤에 선 홰나무나

능소화처럼

나도

배경이 되었음을

배경은

나를 최대한 평평히 말아 넣는 일

나를 희미하게 탈색하는 일

저이들이 인화된 사진을 보며

나를 알아채지 못하게

나는 바위처럼 납작하게

나는 나무처럼 건들거리며

나는 구름처럼 둥싯거리며

나는 가장 나중에야 들통나는 사람

그러나

언젠가 너로부터

배경이 되었던 날처럼

너무 갑작스럽지는 않게

너무 쓸쓸하지는 않게

저이들이 나와 홰나무와 능소화를 홀홀 접어서

손바닥만 한 디카 주머니에 넣고

깨꽃처럼 웃으며 사라진다

◇약력: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입술을 건너간 이름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내가 모르는 한 사람』 등. 시산맥작품상, 김달진 문학상 부문 젊은시인상

■해설: 수수한 깨꽃에 벌들이 달려드는 이유는, 아마도 보잘것없어 보이고 수수하지만, 나름 깨가 품은 고소한 맛, 그 맛의 본질인 그런 꿀을 품고 있음이 아닐까. 시인은 겸손하다. 늘 앞에 드러나기보다는 뒤에 숨는 수줍음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다시 찍힌 사진을 꺼내 보는 날 저이들은 개꽃을 œP으며 배경에 숨어있는 진짜 깨꽃인 시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나를 최대한 평평히 말아 넣는 일/나를 희미하게 탈색하는 일"이 시인의 삶이고 "나는 바위처럼 납작하게/나는 나무처럼 건들거리며/나는 구름처럼 둥싯거리며/나는 가장 나중에야 들통나는 사람"을 꿈꾸는 시인이지만 "너무 갑작스럽지는 않게/ 너무 쓸쓸하지는 않게" 그들에게 다가가 허위와 과장과 폭력을 앞세운 이 시대의 어떤 말보다 힘(맛깔)을 지닌 게 시임을 넌지시 풍유로 드러내고 있으니. 문성해 시인은 고단수의 시인이다.-<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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